보령의사수필문학상
수필은 마음의 산책입니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이 숨어있다. - 피천득의 '수필'중에서
백의(白衣)의 저승사자
- 연도2014년
- 수상동상
- 이름상재형
- 소속분당차병원
처음 해부를 하던 날, 의사가 되어 인턴으로 첫 출근 하던 날, 응급실에서 보았던 첫 환자, 그리고 깊은 한숨과 차마 떨어뜨리지 못한 채 눈에 맺혀 있던 눈물까지 모두 생생히 기억나는, 처음으로 보호자들에게 연명치료중지 동의서를 받던 날이 바로 나의 ‘처음’ 그날들이다.
전공의 1년 차가 된지 한 달이 채 안될 무렵, 아침 회진을 돌며 지시사항을 받아 적느라 정신없던 나에게 교수님은 방금 본 환자의 보호자들에게 연명치료에 대해 설명하고 여부에 대해 동의서를 받으라는 말씀을 하셨다.
뇌경색으로 오랜 병상 생활을 하던 할아버지는 한 달 전 대퇴골 골절로 상태가 나빠졌고 그러던 중 폐렴의 발병과 급속한 진행으로 상태는 점점 더 악화되고 있었다. 항생제와 호흡기치료에도 산소포화도는 떨어져만 갔고 더 이상 호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교수님은 환자의 가족들에게 연명치료 여부에 대해 물으셨다. 보호자들이 상의해보겠다며 하루 이틀 지나던 중 인공호흡기를 달지 않으면 안 될 시점이 오자 교수님은 나에게 그 중대 임무를 맡기셨다.
가족들을 병실 밖으로 불러 모으고 스테이션 위에 동의서를 펼쳐놓았다. 마치 나를 흰옷 입은 저승사자 보듯 바라보는 가족들, 나는 심호흡을 하고 설명을 시작하였다. 교수님과 윗 년차 선생님이 시키신 대로 환자의 상태와 연명치료 여부에 대한 설명을 하려 했지만 내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사과였다.
“의사로서… 가족 분들에게 이런 말씀 드려서 참 죄송한데요… 할아버지는 지금 인공호흡기를 달아야 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은데요… 그리고 인공호흡기를 단다고 해도 앞으로 회복이 어려운 상태인데, 오히려 할아버지가 더 힘들고 괴로울 수도 있고요. 그래서 가족 분들이 원하시면 그렇게 안 할 수도 있긴 한데, 근데 또 의사가 환자를 끝까지 치료하지 않는다는 말도 참 드리기 죄송한데….”
‘환자는 돌아가실 가능성이 높습니다. 원하신다면 무리하게 힘든 치료 하지 않고 그냥 편안하실 수 있도록 보존적 치료만 할 수도 있습니다’라는 말이 차마 입에서 나오지 못하고 목구멍에서 맴돌기만 했다. 정리되지 않고 빙빙 돌기만 하는 나의 설명에 할아버지의 아내 분이 나에게 먼저 그 말을 꺼내었다.
“선생님, 무슨 말인지 잘 압니다. 그러니까 저 양반 살 가망이 없다는 거 아닙니까… 우리도 저 양반 더 이상 힘들게 하기 싫습니다. 그냥 편안히 갈 수 있게 해주세요. 저 사람 중풍 맞고 당신이나 가족 전부 고생 많이 했어요. 그만큼 고생하고 힘들었으면 이제는 편안히 가서 쉴 때 됐어요.
힘든 거 하지 말고 가는 길 편히 갈 수 있게만 해주세요. 그 종이에 이름 쓰고 하면 됩니까?”
담담히 말씀하시던 할머니는 내 손 앞의 연명치료 중단 동의서를 받아 드셨다. 그러나 차마 서명은 하지 못한 채 깊은 한숨과 붉어진 눈시울에 떨리는 손으로 동의서를 아들에게 ‘니가 사인해라’며 종이를 건네셨다. 동의서를 건네받은 아들 역시 눈물 가득한 눈으로 한참 동안 동의서를 바라 본 후에야 서명을 하였다. 마침내 백의의 저승사자 명부 첫 장에 할아버지 이름이 올라갔다.
이틀이 지나고 오후 회진을 준비하던 중 할아버지의 vital이 흔들린다는 연락을 받았다. 할아버지가 계신 병실로 들어서자 할머니 혼자만 할아버지를 붙들고 발을 동동 구르며 조금만 더 기다리란 말만 되풀이하셨다. 아들 내외가 잠깐 집에 다녀온다고 갔는데 그사이에 할아버지 상태가 갑자기 나빠져 아들이 아버지의 임종도 지키지 못할까봐 애타는 모습이었다. 지금 가면 안 된다고, 아들 오면 가라며 할아버지에게 애원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그저 그 곁에 가만히 서서 두 분을 지켜보았다. 마치 혼을 거두러 온 저승사자인 양…….
결국 할아버지는 아들을 기다리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사망 선고를 마치자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눈물을 쏟으셨다.
“여보 내가 미안해, 내가 당신 이렇게 보내면 안 되는데, 너무 힘들어서 미안해, 마지막 가는 길에 이렇게 나 혼자 배웅해서 미안해, 당신 거기 가서는 편히 쉬어, 미안해…….”
병실을 나서는 동안 멀리서 아들 내외가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병실에서 아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의 걸음은 병실을 등지고 한참을 지났지만 그 울음소리는 작아지지 않고 더욱 크게 들려왔다.
시간이 흐르고 나의 사자 명부에는 제법 많은 이름이 올랐다. 그리고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연명치료 중단 동의서를 받고 사망선고를 한다. 하지만 사망선고 후 오열하는 가족들을 볼 때면 여지없이 그 할아버지와 가족들이 생각난다. 수많은 환자와 가족들을 보았음에도 항상 그때의 생각이 나는 것은 아마도 잊을 수 없는 처음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의사는 환자가 그 운명대로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인 것 같아요. 아직 죽을 운명이 아닌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살려야죠. 그렇지만 그 사람이 이미 죽음의 문턱에 들어섰다면 그 길을 편안히 갈 수 있도록 하는 것 역시 우리가 할 일인 것 같아요.”
내과 파견 당시 치프 전공의 선생님이 해주셨던 말씀이다. 비록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는 환자를 편안히 인도하는 사자의 역할 역시 나의 할 일이라 할 지라도 아직 풋내기인 나는 생사의 기로에서 환자를 삶으로 붙잡아 끌어내릴 기적이 좀 더 많이 일어나길 바란다. 그리고 잊지 못할 그 처음의 기적이 곧 찾아오길 소망하고 바라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