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사수필문학상
수필은 마음의 산책입니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이 숨어있다. - 피천득의 '수필'중에서
유기화학을 잘 아는 의사
- 연도2014년
- 수상동상
- 이름전성욱
- 소속인제대학교 해운대백병원
유난히 따뜻한 한낮의 햇살이 창문으로 내리쬐는 일요일 오후….
지난주, 또 일군의 학생들의 6주간 산부인과 임상 실습이 끝났다. 빈 방에 앉아 학생들이 제출한 포트폴리오와 숙제, 그리고 학교에 제출할 평가 서류들이 수북이 쌓여 있는 책상을 바라보는 내입에선 왠지 다른 날보다 더 커다란 한숨 소리만 잦아진다. 응급실 외에는 병원 어느 곳이나 고요하기 이를 데 없는 이 시간…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하고 처량한 상념에 잠겨 있던 중, 문득 지난 기억 속의 한 목소리가 내 머리 한 구석에서 들려왔다.
아…
장세희 교수님…
그 분은 20년 전 내가 의예과를 다니던 그 때, 의예과 전공과목 중 하나였던 유기화학 과목을 가르치시던 교수님이셨다.
당시 그 학문적인 성취나 인격적인 깊이로 모교뿐 아닌 이 나라 화학계 모든 이들의 존경을 받으시던 학계의 큰 어른이었는데… 우리에게는 그러한 사실보다는, 신기하게도 화학과도 아닌 의예과 유기화학이라는, 다른 화학과 교수들이 별로 맡고 싶어 하지도 않는 과목을 수십 년간 고집스럽게 가르쳐오고 계신다는 사실로 더 익숙했던 분이었다.
내 대학동기의 아버님께서 모교 의대를 다니시던 그 시절에도 이미 의예과 유기화학을 가르치고 계셨다고 하였으니까….
공부하기 싫어하는 의예과 학생들에게는 재앙과도 같은 분이셨으니… 워낙 학점을 짜게 주시는 분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특히 성적이 모자라는 학생들에게는 가차없이 F 학점을 내리시는 것으로 유명했다. 당시 예과에서 단 한과목이라도 F를 받으면 본과로 진입할 수 없어 1년간 유급하는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매년 유기화학 기말고사가 끝나고 나면 F를 면하기 위해 교수님 집으로 찾아가는 학생들의 줄이 늘어서곤 했었지만… 그렇다고 학점이 바뀐 경우는 어느 해나 거의 없었다고 들었다. 그래서 예과생들에게 있어서는 옛날 상영하던 TV 드라마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에 나왔던 킹스필드 교수 이상으로 공공의 적이나 다름없는 분이셨으니… 아마 그 당시 지금과 같은 인터넷 게시판이라도 있었다면 아마 의예과 학생 정족수 전체가 참여하는 온라인 안티카페라도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고 여겨질 정도였다.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다른 화학과 교수님께서 그 분께 여쭤보기를, 어차피 화학을 전공할 것도 아닌 사람들인데 그렇게까지 심하게 하실 필요가 있겠어요? 하셨더니 그 분께서 대답하시길, 지금 내게 배우는 이 친구들이 훗날 내 몸을 맡길 의사 선생들이 될 텐데 유기화학에 대한 개념이 부족한 의사에게는 내 몸을 맡기고 싶지 않네, 라고 하셨다니… 여하튼, 그 연세에도 강의시간 내내 차분하지만 조용한 울림으로 강의실을 채우셨던, 정력적이고 꼬장꼬장함을 잃지 않으신 카리스마 있는 노교수님이셨다.
본과 3학년, 내과 임상 실습을 돌던 중이었다. 우연히 병동 환자 명단을 보다가 환자 중에 같은 이름의 환자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혹시나 해서 당시 2년차 내과 전공의 선생님께 여쭤보았더니 그 분이 맞다고 하셨다. 당시 대장직장암 말기암 상태로 회복가능성이 거의 없으신 상태였다. 그래도 예전에 배움을 주신 교수님이시라 당시 실습을 같이 돌던 친구 한 명과 병문안을 드리러 병실로 찾아갔다. 3년 전 예과 시절 때만 해도 그렇게 당당하고 정정하시던 분이셨는데…
1인실 침대 위에는 긴 투병생활로 지친 초췌한 늙은 환자 한 분이 눈을 감고 주무시고 계셨다.
조용히 나가려고 하는데 옆에 앉아 계시던 사모님께서 예기치 않은 의대 실습생의 방문에 놀라심과 동시에 반가우셨는지 그냥 나가보겠다는 우리 만류에도 불구하고 황송하게도 과일을 깎아 대접해주셨다. 그 때, 인기척을 느끼시고 깨신 교수님께서는 몸을 잠시 일으켜서 생면부지 의대생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다가 사모님의 설명을 들으시고는 다른 인사 말씀도 없으신 채 조용히 한 마디만 우리에게 물으셨다.
“ 그래 자네들, 예전에 배운 유기화학이 의학 수업에 도움이 많이 되던가?”
그렇게 카랑카랑하던 목소리는 온데 없이, 이미 병들고 수척한 한 노교수님의 목소리에는 조금도 힘이라고는 실려 있지 않았지만… 그 분의 그 한 말씀은 이전 그분께서 강의하셨던 그 어떤 말씀보다도 내 가슴을 울렸다.
그때 생각했었다.
“신념이 있는 삶이란 정말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구나….”
유난히 따뜻하고 화창한 바깥 날씨, 검토하고 작성해야 할 서류들이 수북히 쌓인 책상, 학생 교육을 전담하는 과정에서 힘들고 지친 마음에 처량한 상념에 빠져 들려고 하던 일요일 오후, 문득 그 분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게 교수라는 꿈을 처음으로 선사하신 분….
지난주 실습 학생들 송별회 중 술이 조금 취한 학생이 한 말이 생각났다.
“교수님, 혹시 다른 병원에 자리가 나더라도 가지 마시고 그냥 계속 저희 학교에 남아주셨으면 좋겠어요.”
학생에게 이 정도로 관심을 가지고 지도해준 교수님이 없었다면서… 당황스럽기도 하고… 그 학생의 진심이 전달되어 솔직히 기쁘고 고맙고 내심 뿌듯하긴 하였지만… 당시 또 한편으로는 어딘가 착잡한 마음도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사실 의과대학 교수의 3대 업무라고 불리는 교육, 연구, 진료 중 가장 무시당하는 영역이 교육이라는 사실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주지의 사실이다. 인간의 숨겨진 욕망이 입신양명일진대, 나 자신의 커리어를 쌓는 것에 큰 도움도 되지 않고 그 성과를 정량화하기도 어려운 교육에 매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TV “명의”에 나오는 유수의 의료계의 석학, 원로들을 떠올려보아도 그 분들이 자신의 환자 진료나 연구로 혁혁한 업적을 쌓았지, 의대생 교육 열심히 한다고 TV에 나올 일은 없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교육에 종사한다는 의과대학의 많은 교수들 역시 아래 전공의나 펠로우에게 학생 교육을 떠넘기는 경우가 허다하고 강의 자료조차 밑으로 떠넘기는 교수들이 많은 것을 부인하긴 어렵다. 학생을 가르치지 않는 교수는 단지 전문의일 뿐, 교수라고 할 수는 없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던 나 자신마저도, 학생 교육을 전담하는 과정에서 때때로 힘들고 지칠 때면 내가 왜 이렇게 내게 도움도 안되는 일을 하고 있지 하는 처량한 상념이 들 때가 간혹 있곤
했었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그렇다가 생각난 것이다. 그 때, 그 분의 모습….
마지막 임종을 얼마 앞둔 그 날까지도 자신이 가르친 학문이 제자들의 의사로서의 길에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고 기원하셨던 노교수님의 모습을 마음속에 그리며 오늘 나는 다시 지친 몸을 다잡고 또 한번 초심을 다짐한다. 아직은 부족하기만 내 작은 의학 교육의 열정일 지라도 언젠가 내가 병든 날 나를 치료해줄, 그리고 내 아이들의 미래를 지켜줄 희망을 쌓는 데 보탬이 되길 기원한다.
나 자신은 그 분이 원하시던 ‘유기화학을 잘아는 의사’가 결국은 되지 못한 부족한 제자였지만…
또 다른 부족한 이들을 채우는 일에 몸담고 있어 나는 행복을 느낀다. 그 분께서 원하셨던 ‘유기화학을 제대로 아는 의사’란 결국 ‘유기화학으로 대변되는’ 기초를 충실히 닦은 의사, 기본에 충실한 의사가 아니었을까? 그 분께서 바라셨을 그런 이를 키우고자 나는 이 길에 서 있다. 내게 배운 이들이 ‘유기화학을 잘 아는’ 의사가 될지는 알 수 없으나… 훗날 ‘산부인과학을 가장 잘 이해하는 내과 의사’나 “산부인과 환자에 대한 의뢰를 가장 잘 할 수 있는 피부과 의사’가 되기를 염원하면서… 내게 배운 이들이 훗날 우리 아이들을 치유할 희망의 등불이 되어주길 꿈꿔본다.
나는 내일 아침 만나게 새로운 실습 학생들을 기다린다. 다른 과 실습보다 훨씬 고되고 힘들다고 알려진 실습 과정, 그리고 양말 색깔 하나까지도 그냥 두고보지 않는다고 소문난 깐깐한 교수 앞에서 언제나 그렇듯 긴장한 얼굴로 부동 자세로 앉아 있을 ‘미래의 의사 선생님’들의 모습을 생각하노라니 어느새 일요일 오후, 지쳤던 내 얼굴에 살포시 웃음이 번져나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