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사수필문학상
수필은 마음의 산책입니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이 숨어있다. - 피천득의 '수필'중에서
젊은 환자
- 연도2014년
- 수상동상
- 이름오규성
- 소속참포도나무병원
아침 회진을 하러 병동에 들어선 순간 간호사가 제게 한 첫 말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정말로요?”
“네.”
걱정스럽게 답을 하는 간호사의 대답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저는 병실로 먼저 들어가버렸습니다. 환자는 걱정스러운 듯 자신의 오른쪽 발목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얼른 환자에게 다가가서 오른쪽 발목을 잡고는 의학적 검사를 시행했습니다.
“발목을 위로 올려보세요.”
“아래로 내려 보세요.”
“제가 손가락으로 만지는 게 잘 느껴지세요?”
“느껴지기는 하는데, 움직이는 것이 잘 안 돼요.”
“일시적으로 그럴 수 있습니다. 수술을 하다가 신경이 눌릴 수도 있는데, 대개 시간이 지나면서 풀리거든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정말로 그렇겠지요?”
환자의 걱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에 저는 일부러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평소보다 큰 목소리로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그럼요.”
병실을 나오면서 어제 했던 수술을 떠올렸습니다.
환자는 35세 젊은 분으로, 두 아이의 아빠였습니다. 갑자기 생긴 심한 요통과 왼쪽 다리로 타고 내려가는 찌릿한 증상으로 119에 실린 채 누워서 내원을 했습니다. 검사한 MRI에서 크게 터져나온 디스크가 보여 같이 온 부인에게 설명을 하고 수술을 들어갔습니다. 간단한 디스크 제거 수술이었기에, 피부 절개도 3cm정도로 작게, 환자에게도 전신마취가 아닌 하반신마취로, 수술시간도 1시간도 걸리지 않게 끝이 나버린 별 일 없었던 수술이었습니다. 수술 후에 환자에게 튀어나왔던 디스크가 이렇게 커요 이러면서 보여주기까지 했던 수술이었습니다. 그런데 발목 마비라니. 수술 중 신경을 끊어먹지도 않았는데. 저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지만 제가 수술 중 잘못한 것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뭔가 잘못을 해서 그 원인을 알면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되는데, 그런 것도 없으니 더 답답했습니다. 정말로 작게 피부절개를 하고 수술을 하는 디스크 제거 수술이었는데 말입니다. 다른 병실의 환자들 회진은 오후에 보겠다고 하고는 계단으로 내려가려다가 갑자기 드는 생각에 놀랐습니다.
‘오른쪽 발목이 안 움직였는데? 수술을 한 왼쪽이 아니고?’
저는 병실로 다시 들어가서 환자에게 확인을 했습니다.
“오른쪽 다리가 지금 마비가 온 것이 맞지요?”
“네.”
“어제 병원에 오실 때 힘들어하시던 다리는 왼쪽이고요?”
“네. 알고 계신 것을 왜 자꾸 물어보세요?”
“아닙니다. 그냥 확인입니다.”
피부 절개부위가 작고, 가운데 튀어나온 등뼈부위 때문에 간단한 디스크 제거수술을 할 때는 반대편의 신경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마비가 반대쪽 발목으로 오다니. 저는 신경외과 선배들에게 전화로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선배들의 의견은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이유로 수술을 할 때 반대편의 신경이 보이지도 않을 텐데 어떻게 손상이 올 수가 있고, 마비가 올 수 있냐면서. 그런 경우가 자신들의 경우에도 한 번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다들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직접적으로 손상을 입힌 것도 아니니까 시간이 지나면 마비가 풀릴 거라고 하면서.
다음날 외래에서 환자분과 부인을 앉혀놓고는 천천히 다 설명을 하였습니다. 왼쪽 다리 저림 때문에 수술을 했는데, 반대쪽인 오른쪽 마비가 온 것은 의학적으로 설명하기 힘들고 또한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돌아올 것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두 부부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 건지, 정말로 돌아올 것인지 확답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언제까지 다 돌아올 것이다라고 확답을 줄 수는 없었습니다. 그냥 애매하게 그럴 것이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환자는 실밥을 풀고 퇴원을 할 때까지 2주 동안 재활치료도 했지만 오른쪽 다리의 마비는 전혀 호전이 없었습니다. 그 동안 혹시라도 제가 모르는 신경 손상이라도 있었을까봐, MRI 검사 등을 다시 하고, 선배 친구들에게 보였지만 다들 모르겠다는 답변뿐이었습니다. 신경에 생기는 드문 질환은 아닐까 걱정이 되어 신경과나 내과도 협진을 했지만 역시나, 별 다른 소견은 없다는 답변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퇴원하기 전날 환자는 제게 무섭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30대 중반, 회사에서 이제 막 팀장으로 승진을 했는데 몇 달은 쉬어야 하니 불이익을 많이 받을 것 같고, 두 아이는 나이도 어린데 이제 커가기 시작하고, 전업주부인 와이프가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너무나도 두려워했습니다. 연말에 있을 내년 연봉협상에도 불리해져서 금전적 손해도 클 것 같다고 울 듯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만을 해줄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환자 퇴원 후 며칠이 지나 병원 법무 팀에서 방문을 했습니다. 선생님이 잘못하신 것이 없는지, 수술 방에서는, 병실에서는, 그 외에 환자에게 충분한 치료를 한 것이 맞는지 확인을 했습니다.
저는 그렇다고 하자, 그럼 병원 측은 잘못한 것이 없으니 원칙대로 하겠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럼 환자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합의를 하던지, 받아들이지 못하시면 소송으로 가게 될 겁니다.”
저로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전에 읽었던 책들을 보니 먼저 실수를 인정을 하고, 환자에게 다가서면 좀 더 좋은 결과를 얻을수 있을 거라고 보았던 것 같은데요.”
“그건 미국 일부 병원에서 현재 실험중인 내용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그렇게 하기는 시기상조입니다. 그렇게 했다가는 병원이 실수를 인정했다고 하면서 난리를 칠 테니까요.”
“그럼 그 젊은 환자는 마비를 안고 가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냥 합의하던가, 오래 걸리는 소송을 하라는 건가요? 가족이나 본인의 괴로움은요?”
“돈으로는 어느 정도 도의적 책임으로 보상을 해드릴 겁니다. 그게 싫다면 소송 걸라고 하세요.
병원 측 잘못이 없다면 소송을 해도 지지 않을 테니까요. 그냥 위로금조로 얼마 쥐어주면 되니까요.”
“아니 그 사람은 인생이 담긴 문제인데 위로금조라니요?”
“선생님 아직 젊으신 것 같네요. 현실이 어떤지도 모르시고.”
법무팀이 방에서 나간 후 저는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돈으로 장애를 해결하려는 병원 측이나, 이유도 모른 채 계속 재활만 하고 있을 환자나, 중간에 끼여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제 자신이 참 우습게 느껴졌습니다. 의도적으로 상대방을 괴롭히려고 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결과적으로는 서로가 서로를 힘들게 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누군가가 정말 악인이었다면 욕을 하고, 대처를 할 수 있을 텐데,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이런 상황이 된 것이 슬펐습니다. 이분법적인 사고방식같이 악인과 선인이 나누어져 있다면, 비난과 응원을 할 수 있을 테지만, 그렇지 않은 애매한 상황이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어 오히려 더욱 답답하게 진행이 되는 것 같습니다. 삶에 대한 걱정이 가득한 환자나, 금전적 손해를 줄이려고만 하는 병원이나, 실수한 것도 없는데 환자는 마비가 와서 고민과 걱정만 늘어가는 의사 모두 가해자 없는 피해자라는 것이 아이러니했습니다.
수술 후 2달이 지났지만, 환자의 오른쪽 발목의 마비는 전혀 좋아지지가 않았습니다. 1주일에 한 번씩 계속 환자와 부인을 만나서 발목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면서, 다른 과와 협진을 하고 치료를 계속 했지만 미약한 정도로만 힘이 돌아오는 것을 느낄 정도의 호전만이 있었습니다. 제 핸드폰 번호까지 알려주고 필요하시면 직접 전화를 하라고 했고, 실제로 몇 번 통화를 하기도 했습니다. 4달 정도 지나자 마비가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전 날 늦게까지 수술을 하고 피곤한 상태로 잠을 자던 아침 걸려온 전화벨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들어보세요.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발목을 움직이니 힘도 느껴지고, 많이 움직여요.”
“다행이네요. 정말 다행입니다. 그런데 지금 새벽 5시에요.”
다음날 바로 외래에 내원을 한 환자의 환한 얼굴은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밝게 변한 목소리와, 웃고 있던 부인의 모습도 아름다웠습니다.
6달이 지나자 환자는 옆에서 보아도 쩔뚝거리지 않을 정도로 잘 걷게 되었습니다. 병원도 보름에 한번만 와도 될 정도로 좋아져서 집 근처에서 퇴근 후 재활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제게 걸려오던 전화도 띄엄띄엄 오던 중, 예약에도 없이 환자가 내원을 하였습니다.
“웬일이세요?”
그 동안 마비로 마음고생은 하였어도, 저와는 잘 지내던 환자가 그 날은 머뭇머뭇 하면서 한 마디 말만 하고는 자리에도 앉지 않고서 문을 닫고 나가버렸습니다.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아니?”
저는 멍하니 닫힌 문을 쳐다보면서 무슨 일이라도 생겼는지 걱정이 되었지만, 환자의 걸음걸이는 이전 어느 때보다 좋아보였습니다.
그 날 오후 법무팀에서 방문을 하였습니다.
“선생님, 고소장이 접수되었습니다.”
“네?”
“그 동안의 마음 고생, 직장에서의 기회 비용, 그리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의료 실수에 대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