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사수필문학상
수필은 마음의 산책입니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이 숨어있다. - 피천득의 '수필'중에서
재관류
- 연도2014년
- 수상은상
- 이름최규성
- 소속삼성서울병원
우리는 모두 숨죽이며, 환자의 vital sign을 감지한다.
차디찬 기증자로부터 받은 간에 따뜻한 피가 돌면서 서서히 분홍 빛을 띄어간다.
순간 환자의 평균혈압은 90에서 70, 60을 거쳐 50까지 떨어진다.
마취과 의사의 손길은 바빠지고, 곧 혈압은 서서히 오르기 시작해 정상을 찾는다.
이제 우리는 간동맥을 연결하고, 담관을 연결하면 수술은 끝나게 된다.
6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후에 나는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수술방을 나섰다.
모든 장기가 그렇지만 오랜 시간 피가 공급되지 않으면, 허혈성 손상을 입는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피가 공급되지 않던 장기에 다시 피가 공급될 때 발생하는 재관류 손상이다.
재관류 손상은 허혈 시간이 길면 길수록, 간에 지방이 많을수록 더욱 심각하다. 이는 혈압의 저하 등 생명을 위협하는 경우도 있고, 드물게는 이식 장기의 기능 부전으로 재이식을 해야 하는 경우를 만들기도 한다. 간이식 수술의 첫 번째 고비인 샘이다.
서른 즈음의 듬직한 청년이 진료실로 찾아 왔다. 그가 나에게 온 이유는 아버지 때문이었다. 그는 여섯 살 무렵 부모의 이혼으로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고, 아버지는 재혼을 하셔서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계셨단다. 본인의 기억 속에는 아득하게만 남아 있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어느 날 어머니를 통해 그를 찾았다고 한다. 조금 더 정확히 아버지의 부인이 그를 찾았다. 아버지가 말기 간질환으로 간성혼수가 나타나 돌아가시기 직전이라는 소식과 간이식을 해야 한다는 말을 전해주려고.
그의 심정이 어떠하리라 추측은 했지만, 그저 내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객관적으로 이식의 성공률은 몇 퍼센트이고, 당신이 간을 기증하면 사망 확률은 얼마이고, 이러저러한 합병증이 생길 수 있고, 얼마간은 입원 치료를 하여야 하고, 또 얼마간은 직장 생활을 할 수 없으니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결정하라는 가장 의사다운, 의사스러운 설명이었다.
그에게 아버지는 어떤 기억이었을까?
부부간의 불화 속에 화난 모습의 아버지로만 기억되고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존재 자체가 지워진 아무런 흔적조차 없는 사람일 수도 있고, 어쩌면 부럽기만 한 남의 집 구성원의 한 사람일 수도 있을 것이다. 여하튼 나의 상식과 간접 경험으로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아 있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그가 간 기증을 하리라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수일이 지난 후 다시 나를 찾아왔다. 아버지에게 간을 기증하겠다고,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궁금증이 나의 혀를 자극하고 있었지만,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
또한 천근만근 무거워 보이는 그의 입술이 나의 사사로운 질문에는 결코 대답할 것 같지 않았다.
복잡한 검사와 절차가 끝난 후 이식 수술은 이루어졌다. 끊어졌던 아버지와 아들의 긴 허혈 시간에 새로운 피가 돌고 재관류가 잘 이루어졌을까? 수술 후 그와 아버지 모두 별 문제없이 회복되고 있었다. 며칠 후 그에게 아버지를 보고 싶으면 중환자실로 가서 만나도 된다고 하였고, 그들의 만남을 목격한 것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 그가 퇴원하기로 한 날이었다. 말끔하게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그는 격리실 유리창 너머의 아버지를 넌지시 보고 있었다. 그의 눈이 많은 이야기를 하는 듯 했다. 가까이 다가가지는 않았다. 아무도 그에게 다가가라고 강요하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아들이 온 것을 보고 잠시 눈을 마주친 후, 미안함에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듯 했다. 짧은 시간의 만남 뒤 그는 가벼운 목례를 남기고 사라졌다.
둘 사이에 재관류가 이루어지고 있는 듯 했다. 가장 손상이 많은 시간이 지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보이지 않은 폭풍우가 그의 머리 속에 몰아치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그는 애써 태연하려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보였다.
퇴원 후 2주가 지나 외래 약속 날짜에 만난 아들의 표정은 한결 가벼워 보였다. 물론 그 사이 그의 아버지도 퇴원을 준비하고 있었고, 두 사람 모두 정상적인 간기능 수치를 보이고 있었다. 이제는 제법 서로 얼굴이 익은 지라 가벼운 농담도 주고 받고, 다음 2주뒤 영상 검사를 안내해주고,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2주 뒤 만난 그에게 나는 당신의 간이 건강하게 잘 잘랐고, 기능상의 문제가 없으니 잘 지내시라는 인사를 건넸고, 그는 나에게 감사하다는 짧은 인사와 쪽지 한 장을 건냈다.
“아버지를 다시 만나 너무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편찮으신 모습에 너무 마음이 아팠는데, 다시 건강해지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건강하실 수 있도록 잘 보살펴주십시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나의 기대와는 달리 그들의 재관류는 별 손상 없이 진행되었던 모양이다. 내가 생각하고 상상한 것처럼 큰 울분이나, 서러움 같은 격정적 감정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마치 그들의 피가 계속 이어져 흘렀던 것처럼, 여느 가정의 아버지 아들과 다를 바 없는 무던하고 절제된 모습 그대로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텔레비전 드라마처럼 격정적이고, 역동적이지 않은 그들의 모습이, 어색하기보다는 너무나 친숙하게 한편으로는 그럴 수도 있다는 당연함으로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가벼운 감상을 잊기에는 내 일상은 충분하였다. 학회 준비에 응급 수술에 정신없이 바쁘던 삼사일이 지난 후, 오랜만에 일찍 퇴근하여 저녁을 함께 하러 집에 들어가던 날, 나를 한 없이 반갑게 맞아줄 것 같은 우리 딸은 오늘 아침에 본 아빠의 얼굴인 듯 심드렁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 후자신의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기시감이 느껴졌다. 마치 그들처럼.
실전은 텔레비전이나 책과는 너무 다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