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사수필문학상
수필은 마음의 산책입니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이 숨어있다. - 피천득의 '수필'중에서
연민의 두 얼굴
- 연도2014년
- 수상은상
- 이름강세나
- 소속대구기독병원
의사의 위치에서 환자가 되면 내가 했던 모든 것들이 반대의 입장으로 느껴진다. 아무렇지 않게 내리는 진단에 대한 설명, 피검사, 소변검사, 엑스레이부터 시작해서 수액을 맞을 때, 열이 오를때, 그리고 응급실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느낌까지 이전과는 다르다. 사실 지금 나의 상태는 살면서 누구나 다 한번쯤은 겪을 법한 경증 질환이다. 나도 병원에서 이정도의 환자를 봤다면 그렇게 중하게 여기진 않았으리라. 워낙 흔한 경우니까. 하지만 이게 내가 환자 입장이 되는 순간 달라진다. 열이 38도까지 오르니 얼마나 어지럽고 몸을 가누기 힘들던지. 수액 하나 맞는 것도 팔이 아프고 불편하다. 환자들이 이런 느낌이었고 이런 심경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가 환자를 대할 때 보통 느끼는 감정들 중에 가장 많이 드는 것을 꼽으라면 아마 연민이 아닐까. 심장에 문제가 있어 태어나자마자 엄마 품을 떠나 신생아 중환자실에 들어온 작은 아기, 어린 나이에 난소에 암이 생겨서 난소 절제술을 받아야 하는 여자 중학생, 결혼을 한 달여 남겨두고 받은 건강검진에서 위암이 발견되어 6개월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파혼을 요구받은 30대 남자 환자, 평생을 자식들을 위해서 희생하고 고생하여 이제 좀 살림이 괜찮아졌는데 뇌졸중이 온 할머니까지.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안타까운 마음이 생기는 환자들은 병원에 참 많다.
그런데 이런 환자들을 수백 명이 넘게 보면서 연민의 마음을 수없이 느꼈을 의사들도 본인이 직접 환자가 되어 진단을 받고 입원을 하고 치료를 받게 되면 그 익숙하던 병원의 느낌이 사뭇 다름을 많이 토로한다. 환자들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을까. 이런 상황에서 환자들은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라는 생각들이 든다. 연민이 아닌 동병상련의 마음, 즉 동정이다.
일반적으로 연민의 감정은 좋은 감정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연민에는 나는 불행하지 않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연민의 감정 뒤에는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는 존재감, 남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서 내가 더 강자임을 느끼는 자부심이 숨어 있다. 내가 당장 환자의 입장에 처했을 때 느끼는 당혹감과 새로운 동정의 감정은, 내가 약자가 되리라고는 진정으로 생각해본 적 없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연민의 감정을 다룬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 ‘초조한 마음’에는 이러한 연민의 이중적인 성격이 잘 드러나 있다. 주인공 호프밀러는 장애인 에디트에게 연민을 느끼고 보살펴주면서 자신이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에 흥분한다. 하지만 호프밀러는 장애인인 에디트 역시 사랑을 할 수 있는 열정적인 여인이라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 호프밀러에게 에디트는 자신이 더 우월한 상태에 있음을 알게 해주며 도와줌으로써 자기 스스로의 자부심을 높일 수 있는 상대에 불과하다. 그래서 에디트가 그에게 불타는 사랑의 마음을 고백했을 때 호프밀러는 매우 당황한다. 에디트는 호프밀러가 자신을 그저 연민의 대상으로만 느낀다는 것을 깨닫고 엄청난 상처를 받는다.
“연민이라는 것은 양날을 가졌답니다. 연민을 잘 다루지 못하겠으면 거기서 손을 떼고, 특히 마음을 떼야 합니다. 연민은 모르핀과도 같습니다. 처음에는 환자에게 도움이 되고 치료도 되지만 그 양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거나 제때 중단하지 않으면 치명적인 독이 됩니다.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연민은 무관심보다도 더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우리 의사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고, 판사나 법 집행관, 전당포 주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연민이라는 거, 아주 위험한 겁니다!”
여기서 연민의 위험성을 경고해주는 사람이 의사라는 것은 참 의미심장하다. 가장 연민에 빠지기 쉬운 직업이고, 또 그만큼 연민으로 상처를 주기 쉬운 직업이어서가 아닐까? 병원에서 많은 환자들을 보다 보면, 내가 건강하다는 것에 다행의 한숨을 내쉬게 된다. 이것이 바로 연민의 숨겨진 우월감의 모습이다. 이러한 연민의 숨겨진 폭력성은 상대방에게 위치의 높고 낮음을 느끼게 한다. 연민의 대상이 된 환자는 자동적으로 의사보다 낮은 위치에 서게 된다. 이것이 때로는 환자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 개별적인 한 인간으로서 대우받는 것이 아니라 병을 가진 불쌍한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다 내가 환자에 입장에 처하게 되면 왜 그 느낌이 달라지는가. 그것은 이제 환자들이 연민의 대상이 아닌 같은 처지인 동정의 대상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동정은 더 위에 있는 사람이 베푸는 연민과는 다르다. 같은 비극의 상황에 빠져 있다는 것이 동정의 전제조건이다. 동정은 진정한 공감에서 나온다. 같은 병실에 누워 있는 사람들끼리의 감정은 연민이 아니라 동정이다. 하지만 이런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끼기 위해 의사가 아플 순 없다. 그렇다면 긍정적인 연민은 없는 걸까?
소설 ‘초조한 마음’에서는 연민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대신 그 대안의 연민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연민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그중 하나인 나약하고 감상적인 연민은 그저 남의 불행에서 느끼는 충격과 부끄러움으로부터 가능한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하는 초조한 마음에 불과하며, 함께 고통을 나누는 대신 남의 고통으로부터 본능적으로 자신의 영혼을 방어한다. 진정한 연민이란 감상적이지 않은 창조적인 연민으로, 이것은 무엇을 원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힘이 닿는 한 그리고 그 이상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함께 견디며 모든 것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연민을 말한다.”
하루에도 수많은 환자를 마주쳐야 하는 의사라는 직업에서 습관처럼 느껴지던 연민이 어떤 쪽에 더 가까웠는지 한 번쯤은 생각해볼 일이다. 나 자신을 위한 방어였는지 인내심과 의지를 지닌 마음이었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