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사수필문학상
수필은 마음의 산책입니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이 숨어있다. - 피천득의 '수필'중에서
눈물의 의미
- 연도2009년
- 수상동상
- 이름김강석
- 소속임상의학연구소
사과 반쪽, 바나나 반 토막 그리고 엄지 손가락만한 사료들.
이 아이들의 아침 식사 식단이다.
먹이통을 열었다 닫았다 자기부터 달라고 욕심부리는 아이, 용케도 사과 껍질을 벗겨내고 먹는 아이, 두 손에 과일을 움켜쥐고 구석으로 가 등돌리고 앉아 먹는 아이.
매일 아침 아이들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 아이들과 지낸 지도 벌써 1년하고도 6개월이 되어간다.
처음에는 다 비슷비슷 하게 생긴 아이들이 낯설었지만 이제는 조금씩 정도 들고 얼굴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 같다.
이 아이들은 당뇨병 치료 연구를 위해 여기에 모여있다. 돼지에서 분리한 세포를 이들에게 이식하는데, 말하자면 세포 치료 실험의 연구 대상인 것이다. 인간과 닮아 겪어야 하는 이들만의 운명이다.
처음 공중보건의 발령을 받고 실험실에 들어와 본 것은 20여 마리의 원숭이들이었다. 이전에 실험했던 돼지나 실험 쥐와는 약간 다른 느낌이었지만 크게 특별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지능이 높고 사람과 닮았다 한들 동물은 동물이지 뭐 별게 있겠나 하는 생각이었다. 오히려 덩치가 커서 다루기도 힘들고 기회만 생기면 탈출하려고 머리 쓰는 녀석들이라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티브이에서 보듯 조금만 교육시키면 알아서 척척 자세도 취하고, 사람을 잘 따를 줄 알았는데 내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바나나를 줘서 달래도보고 큰소리로 꾸짖어봐도 소 귀에 경읽기가 따로 없었다. 나만 보면 괴성을 지르고 으르렁대는 녀석들이 태반인지라 얘들과 친해지는 길은 멀고도 험난해 보였다.
그냥 맘 편하게 원숭이를 다루는 건 전적으로 수의사 선생님께 맡겨두고 나는 원숭이가 마취될 때까지 기다리다가 수술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서커스 단에 있는 원숭이들처럼 재롱을 피우진 못해도 조금만 가르치면 내 마음대로 다룰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내가 시키는 건 무조건 반대로 하는 녀석들한테 백기를 들었다. 잘못하다간 물리거나 할퀴기 십상이라 차라리 건드리지 않는 편이 나아 보였다.
그렇게 아옹다옹하며 하루 이틀이 가고 첫 이식 수술 날짜가 다가왔다.
수술 하는 날은 이른 아침부터 전쟁터가 따로 없다. 수술 전 금식을 해야 하기 때문에 배가 고픈 녀석은 밥부터 달라고 아우성이다. 소리를 지르든지 말든지 나는 수술 도구를 챙기고, 일정을 점검하며 할 일만 하고 있었다. 마취가 시작되고 수술대 위로 원숭이가 눕혀졌다. 마취가 되어 가만히 누워있는 것을 보니 좀 측은한 생각도 든다.
‘얘가 이렇게 작았었나?’
어른 손바닥만한 작은 배, 가늘고 긴 팔다리. 얼핏 보면 3-4살쯤 되는 어린 아이 같다. 자세히 볼수록 사람이랑 참 많이 닮았다. 이렇게 보니 은근히 귀엽고 온순한 것도 같은데 이런 모습은 잠들었을 때 뿐이다. 저러다가도 일어나면 또 무슨 짓을 하고 다닐지 모르니 말이다.
2시간 가량 진행된 수술은 별다른 이상 없이 잘 마무리 되어 가고 있었다. 배를 갈랐던 상처를 수의사는 참 꼼꼼히도 한 뜸 한 뜸 정성 들여 봉합해 준다. 상처 소독도 대충하는 법이 없다.
눈꺼풀을 깜빡깜빡 움직이는 것을 보니 서서히 깨어날 시간이 되었나 보다. 아직 마취 기운이 남아있기에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한다. 수의사 품에 아기처럼 안겨서 천천히 숨을 고르고 있다. 좀 있다 깨어나면 또 난리 치지 않으려나 하는 생각에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십 분쯤 지났으려나 힐끗힐끗 원숭이 쪽을 바라보다 이상한 것을 보았다. 원숭이눈가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있는 것이었다. 수의사 선생님이 토닥이며 아이 달래듯 달래준다.
‘설마 눈물을? 아파서 그런 걸까? 슬퍼서 우는 건가?’
그럴 리가 없었다. 그냥 수술 받는 동안 조명에 눈이 부셨거나 눈에 뭔가가 들어갔을 것이다. 내가 잘못 봤으려니 하며 가까이 다가갔다.
그 순간 눈물 한 줄기가 녀석의 볼을 타고 주르륵 흐른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그 눈물은 수술이 끝나고 회복실에서 눈물을 흘리던 환자들의 그것과 같았다.
“수술 잘 되었습니다. 눈 떠 보세요”
이 한마디에 왈칵 눈물을 쏟아냈던 환자와 보호자들.
외과 의사가 힘들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 보람 있고 가슴 뭉클했던 순간이 없었다.
그런데 이 아이는 무슨 말을 들었는지 수술이 끝나고 아빠 품에 안겨있는 아이처럼 수의사 품에 쏙 들어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머리가 멍해졌다. 난 그 동안 아무 감정 없는 동물로만 생각했었는데 오늘 본 눈물은 이제까지 봐왔던 그 어느 눈물보다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미안했다.
“선생님 얘들이 원래 이렇게 잘 우나요?”
겸연쩍은 마음에 그냥 내뱉어 본 말이었다. 솔직하게 내가 궁금했던 건 따로 있었다. 원숭이도 감정을 느끼고 슬퍼하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왜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 저 눈물은 진짜인지 궁금했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난 이미 찾은 것 같았다. 이 눈물이 충분한 답이 되었기 때문이다.
원숭이를 품 안에 안고 있는 수의사의 모습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그랬던 거였구나.’
진심으로 그 아이를 걱정해주는 모습이었다.
난 왜 몰랐을까. 그 동안 나는 마음을 닫은 채로 마음에도 없는 과일 몇 개로 그들의 대장이 되려고 했으니 순순히 따라올 리가 없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소통할 수 있는 길이 있었는데 일방적으로 명령만 내렸으니 내가 참으로 이기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런 따뜻함과 배려심을 난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원숭이는 그냥 실험에 쓰이는 도구와 다를 바가 없다고 여기고,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일들이 떠올라 미안했다. 그리고 한편으론 이제라도 깨닫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다음날 한 마리 한 마리 새로 이름부터 다시 지어 주었다. 처음으로 머리도 한 번 쓰다듬어 주었다. 삼순이, 꾀돌이, 대머리, 순둥이… 투박한 이름들이지만 이보다 더 이상 딱 어울릴 수가 없다. 물론 아직은 이렇게 불러봤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다. 여전히 나에게 비호의적이고 노려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 아이들도 내 마음을 이해하고 따르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그 때 내가 본 눈물이 나에게 진심으로 다가온 것처럼 내 목소리도 아이들의 마음에 진심으로 울려 퍼지길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