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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과 빈 의자, 그리고 가디건

  • 연도2025년
  • 수상대상
  • 이름이진환
  • 소속두드림정신건강의학과의원

ㅡ선생님. 왜 자살을 하면 안 되나요?

이 질문을 들을 때마다 나는 긴장한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이 질문에 만족스럽게 답변을 한 적이 없다. 이것은 허락을 구하는 것이 아니고, 이유를 묻는 것도 아닌, 마지막까지 내몰려 절망한 사람의 조용한 비명이기 때문이다. 그런 비명에는 어떤 대답도 무용해 보인다.


삼십 대 후반의 P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녀의 증세가 그리 중하지 않다고 여겼다. 자신이 이 공간, 이 진료실에 온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그녀는 목졸리는 사람처럼 작은 목소리와 움츠러든 어깨로 자신이 겪는 어려움을 간략히 설명했다. 지칠 줄 모르고 울어대는 아이의 울음소리와 육아에 무관심한 남편, 칼을 들이밀며 협박하는 민원인들과 이런 어려움을 모른 척 하는 상사에 대해서 말했다. 돌이켜보면 첫 만남의 순간은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희미했고, 그러한 희박한 느낌에 근거하여 가벼운 번아웃으로 판단했다. 취미를 물었더니 뜨개질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취미를 다시 시작할 것을 권고하고 소량의 항우울제를 처방했다. 그녀에게는 증상의 빠른 호전을 약속해주었고, 그렇게 될 것이라 나 자신도 믿었다.


그런데 내 예상과는 달리 P의 증상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그녀가 들어올 때마다 진료실 내 감정의 습도가 올라가는 듯했다. 비 오기 전의 흙냄새가 비를 예고하듯이, 내부에서 붕괴가 일어나고 있는 인간의 냄새가 전해져왔다. 나는 그녀의 존재 깊은 곳에서부터 밀려나오고 있는 먹구름 같은 고통을 읽었다.


P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다. 휴직도, 육아 도우미를 쓰지도 못했고, 남편은 정신과 치료를 반대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난파하고 있었다.


첫 번째 자살시도는 남편과의 갈등으로 일어났다. 연탄을 피웠고, 이웃주민의 신고로 그녀는 겨우 살았다. P의 남편이 왜 너만 유난이냐고 비난했기 때문이다. 자살시도를 한 다음 날 P는 내 진료실로 찾아왔다. 나는 외래기반의 진료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살을 막기 위한 입원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보호자인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P의 상태와 자살의 위험성, 입원치료의 필요성에 대한 길고 장황한 설명을 듣고 난 뒤 남편의 대답은 "." 단 한 글자였다. 온몸으로 거부감을 표현하는 듯한 한 음절이었다. 나는 끊어진 전화기를 들고 말없이 있었다. 내 옆에서 통화를 듣던 그녀는 그럴 줄 알았다고 했다. 그녀가 울기 시작했다. 처음이었다.


버티고 버티던 인간이 무너지는 장면을 보는 일은 언제나 버겁다. 둑이 터지는 것처럼, 쌓인 쌓인 먹구름이 비를 내리치는 것처럼 그녀는 울었다. 소리치지 않았고, 흐느끼지 않았다.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그저 도저히 어찌할 수 없다는 듯 눈물이 빗방울처럼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눈은 영혼의 창이라고 하였는데, 그녀의 영혼은 전부 눈물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였다. 격류처럼 밀어닥치는 슬픔에 나는 떠내려가지 않으려 애썼어야 했고, 빈 껍질만 남은 사람처럼 그녀는 울었다.


ㅡ선생님, 왜 자살을 하면 안 되나요?

내가 두려워하던 질문이었다. P가 이렇게 물었을 때 나는 참담했다. 쏟아지는 빗속에 혼자 서있는 인간의 심상이 내 마음에 떠올랐다. 모든 길이 닫힌 채, 유일한 선택지는 자살뿐인 것처럼 그녀는 물었다. 그녀의 생명은 세상에서 떠날 듯 흔들리는 폭풍우 속의 연 같았다. 나는 어떻게 답해줄지 몰랐다. 내 말은 모두 힘을 잃은 듯 했다.


ㅡ이 진료실을 나가면,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 말을 남기고서 그녀는 나갔다.

 

그로부터 얼마 후 꿈을 꾸었다. 내 진료실의 풍경이었다. 다만 평소와 달리 나는 환자들이 앉는, 내 자리의 반대쪽에 앉아 있었다. 꿈속의 나는 슬펐고, 절박했다. 간절한 마음으로, 내가 해야 할 질문도 모른 채로 무슨 말이든 좋으니 대답을 듣기를 원했다. 그런데 내 맞은편의 자리에는 빈 의자만이 있었다. 막막했다. 그 순간 나는 절대적 혼자였다. 천천히 꿈에서 깨어난 나는 안도감을 느꼈고, 안도감을 느낀 내가 싫었다. 이 절망감과 막막함은 내 안에서 온 것이 아니었다. 내가 느낀 건 P의 고통이었다. 공감은 단어 그대로 함께() 느끼다()’라는 뜻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공감은 몰이해의 해독제였다. '자리 바꾸기'의 꿈을 꾸고 난 후, 나는 P의 고통을 생생하게 이해했다. 이해한 것이 아니라 함께 겪었다. 세상에 의지할 곳 없이 혼자 버려진 듯한 그녀의 절망감을 알았다. 빈 의자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필요하다. 나는 그녀의 고통을 내 마음 안에 담았다.


다행히 며칠 뒤 P는 다시 내 진료실로 왔고, 몇 번인가의 자살시도가 더 있었다. 나는 그 순간마다 함께 있으려고 했다. 그녀는 다시 왜 자살을 하면 안 되냐고 물었고, 나는 깊이 연결된 마음으로 이해하려 애썼다. 대답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생명의 존엄성이나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으로 설득하는 것은 하나 마나한 일이었다. 이 때문에 나는 자살을 하라고 할 수도,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었다. 자살을 하라고 한다면 그녀를 포기하는 것처럼 들릴 것이고, 자살을 하지 말라고 한다면 그녀의 고통을 몰라주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양자택일의 사이에서 위태롭게 존재는 흔들렸고, 그러면서도 시간은 흘러가고 생명은 스스로를 돌보았다. 비가 내리는 P의 세상 속에서도, 죽음 쪽으로 시선을 고정한 그녀의 등 뒤에서는 해가 뜨고 해가 지고, 새벽과 황혼이 있을 것이었다. 그녀가 고개만 돌린다면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을 것이었다. 나는 그녀가 그것을 알기를 바랐다. 다만 그녀가 살기를 바랐다.


나의 노력을 알아주었는지, 조금씩 P는 저항했다. 자신을 가라앉힌 고통의 바다에서 온 힘을 다해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방치하는 상사에게 권리를 주장했고, 휴직계를 제출했다. 친정과 시댁에도 자신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음을 알렸다. 남편을 설득하기를 포기했다. 끝내 남편이 입원에 동의해주지 않자, 그녀는 어머니를 설득하여 입원치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가겠다고 했다. 그녀 스스로가 성취해내는 변화들을 나는 응원하고 지지해주었다.


P가 간 뒤에도 나는 빈 의자의 꿈을 생각했다. 그녀에게 더 나은 도움이 될 수는 없었을지를 때때로 고민했다. 그녀가 살았을지, 끝내 죽었을지에 관한 생각들이 이따금 침입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 진료실로 왔다 갔고, 나는 빈 의자를 보여주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심장이 뛰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처럼, 마음과 생각도 멈춤이 없다고 했다. 무너진 인간의 슬픔이 자꾸만 아프게 느껴졌다. 내 마음의 더듬이가 길어지는 듯했다. 나는 더 자세히, 더 깊게 알기를 원했다. 그러자 오랫동안 진료를 받아오던 사람들이 덮어 놓았던 아픔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오직 자해로만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었던 중학생과 아버지에게 심하게 맞고 나면 스스로의 심장 소리를 느끼며 아직 살아있음을 느꼈다는 소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 모두 자살을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그저 아프지 않길 원했고, 그저 살고 싶었다고 했다. 그녀도 분명 그랬을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P의 이름이 진료 대기 목록에 떠 있었다. 나는 졸아드는 마음으로 그녀를 호출했다. 그녀가 웃으며 걸어 들어왔다.

길었던 머리를 단발로 자른 P는 새하얀 가디건을 입고 있었다. 여전히 죽고 싶지만가끔 이 진료실에서 보낸 시간을 생각했다고 했다. 이번에는 그녀의 맞은편에 내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고통 속에서 혼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또 그녀는 왜 자살을 하면 안 되냐고 물었지만, 이번에는 입가에 미소를 띤 채였다. 나는 나 스스로도, 그녀도 만족할 만한 답변을 떠올렸지만, 굳이 말하지 않고 그저 빙그레 웃었다. 필요 없는 말로 기쁨의 순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진료실을 나가기 전 그녀는 일어서서 가디건을 만지며 말했다.

ㅡ이거 제가 짠 옷이에요.

나는 먹먹한 감동에 말을 잇지 못했다. 황폐해진 그녀의 세상 속에서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부서진 잔해들을 그러모아 손으로 한 땀, 한 땀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냈다. 그러므로 그 옷은 날개옷 같았다. 무덤을 깨뜨리고 날아오른 나비 같았고, 부활 같았다. 그녀의 얼굴에서, 새롭게 자아낸 옷에서 먹구름 뒤에 가려졌던 해가 빛나는 것 같았다. 내가 정신과 의사가 되기를 잘했다고 느끼는 순간이었다. 나는 오직 감사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와 나는 같은 시간과 고통을 건넜고, 그 건넘으로 인해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었다.


P의 세상에서 다시 비는 내릴 수 있고, 때로는 먹구름이 지나가기도 할 터이지만 그녀는 고통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음을, 그녀 자신이 고통보다 크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녀가 고통에 잠겨있을 때, 다른 시각을 보여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우울증 환자는 극단적으로 좁아진 시야 때문에 선택할 자유를 잃는다. 그것은 실로 자살에 이르는 병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고, 없어야 한다고 믿는다. 자살만이 답이 아님을, 한정되어 보이는 선택지 안에서도 자유롭다는 시각을 되찾아주는 것이 정신과 의사의 역할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관찰자가 아니라, 같은 눈높이에 설 때만 가능하다.


왜 자살을 하면 안 되는가? 이 질문에 나는 영원히 정답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모두가 저마다의 대답을 하지만 나는 이 대답들이 자살 앞에 선 사람들을 진정으로 구할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존엄사가 인간의 권리로 여겨지는 세상 속에서, 자살을 막는 것이 정말로 내가 해야 할 일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자살을 말하는 모두가 정말로 죽고 싶은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말이 힘을 잃는 곳에서 죽음을 막는 것은 다만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건네는 공감일 것이다. 죽고 싶다고 말하던 그녀도 끝끝내 스스로 살아갈 이유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힘은 원래부터 그녀 안에 있었다. 나는 고통 뒤에 잠깐 가려진 그 힘을 재발견하도록 도와주었다. 그러므로 그 시간을 건너 내가 찾아낸 그녀에게 어울리는 대답은 이것이다. 아마 그녀도 동의하리라 믿는다. 이 대답을 해주기 위해서 나는 내 진료실의 의자를 비워놓지 않으려 한다.


ㅡ당신이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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