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사수필문학상
수필은 마음의 산책입니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이 숨어있다. - 피천득의 '수필'중에서
고요와 아수라의 경계에서
- 연도2025년
- 수상금상
- 이름조영준
- 소속추새로병원
2022년 10월 29일, 한 내과의사의 기록
1. 막이 내린 무대
나는 오랫동안 죽음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며 살아왔다. 병원이라는 공간은 인간의 시작과 끝이 동시에 존재하는 곳, 수많은 삶과 죽음이 겹겹이 교차하는 가장 농축된 무대였다. 흰 가운을 걸친 나는 그 무대의 연출가이자, 때로는 아무 힘도 쓰지 못하는 관객이 되었다. 응급실의 단말마, 중환자실의 희미해져 가는 모니터음, 임종의 마지막 호흡. 나는 그 모든 장면 속에서 냉철함을 강요받았다. 감정에 휘둘리는 순간, 손끝은 무뎌지고 판단은 흐려진다. 그래서 죽음은 내게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삶이라는 연극의 장막이 내려오는 자연스러운 절차라고 믿어왔다.
20년의 의사생활 동안 수많은 죽음을 머릿속에 기록했다. 병으로 인한 죽음, 사고로 인한 죽음, 노화로 인한 죽음. 그 각각의 죽음은 나름의 원인과 서사를 지니고 있었고, 나는 그 서사를 분석하고 개입하며 결말을 조금이라도 늦추려 애썼다. 하지만 2022년 10월 29일,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세상에는 어떤 지식도, 어떤 훈련된 평정심도 감당하지 못하는 죽음이 있다는 사실을.
그날 나는 의사가 아니라 한 개인으로 서울에 있었다. 학회 참석을 위해 이태원 인근 호텔에 짐을 풀고 창밖의 화려한 야경을 바라보았다. 젊음의 웃음소리가 도시를 메우고 있었고, 그것은 기분 좋은 백색소음처럼 들렸다. 샤워를 마치고 막 침대에 눕던 순간,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속보] 이태원 해밀톤 호텔 인근서 대규모 압사 사고 발생 추정…’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21세기 서울의 한복판에서 ‘압사’라니. 현실의 단어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TV 속 화면은 내 부정을 무너뜨렸다. 내 숙소에서 불과 몇백 미터 떨어진 골목. 수십 대의 구급차 불빛이 밤거리를 찢고 있었고, 절규와 혼돈이 도시 한복판을 삼켜버리고 있었다.
나는 본능처럼 외투를 걸치고 현장으로 걸어갔다. 호텔 문을 열자마자, 바깥의 공기는 전혀 다른 밀도를 지니고 있었다. 환희는 사라지고, 비명과 울음과 사이렌 소리가 뒤엉켜 나를 집어삼켰다. 그것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거대한 비극의 소용돌이였다. 그리고 나는 알지 못했다. 그 소용돌이가 내 삶의 가장 잔혹한 밤으로 나를 삼켜버릴 것을.
2. 전장의 한가운데
현실은 TV보다 훨씬 잔혹했다. 좁은 내리막 골목은 이미 무덤이었다. 축제를 위해 화려하게 꾸민 젊은이들이 차가운 길 위에 겹겹이 쓰러져 있었다. 경찰과 소방관들이 그 시신 더미 사이를 헤치며 사투를 벌였고, 시민들은 절박하게 맨손으로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다.
“의료진 계십니까! 의사 없습니까!”
그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들었다. “의사입니다!” 그리고 다시, 나는 한 개인에서 의사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곳은 병원이 아니었다. 약물도 장비도 없었다. 이곳은 원칙도 존엄도 무너진 원초적 전쟁터였다. 포화 대신 비명이, 총성 대신 사이렌이 울려 퍼지는 아수라였다.
나는 무릎을 꿇었다. 내 앞에는 앳된 얼굴의 젊은 여성이 쓰러져 있었다. 화려한 분장이 창백한 피부 위에서 기묘하게 번져 있었다. 호흡 없음. 맥박 없음. 동공 산대. 나는 주저할 틈도 없이 기도를 확보하고 가슴을 압박했다.
하나, 둘, 셋, 넷… 서른. 그리고 인공호흡 두 번.
익숙한 동작이었지만, 그날 밤의 압박은 차라리 절규에 가까웠다. 내 손바닥 아래서 갈비뼈가 부러져 나갔지만 멈출 수 없었다. 땀은 눈을 가렸고, 팔은 끊어질 듯 떨렸다. 옆에서는 이름도 모르는 시민이 내 구령에 맞춰 또 다른 환자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었으나, 그 순간만큼은 같은 전우였다.
그러나 시간은 무의미했다. 한 명을 포기하고 또 다른 젊은이의 가슴을 눌렀다. 마치 끝없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죽음을 되살리려는 기계처럼. 그러나 매번, 손끝에서 전해지는 것은 뜨거운 생명이 아니라 차갑게 꺼져가는 청춘이었다. 나는 의사였지만, 그 밤에는 신의 그림자조차 닿지 않았다.
소리는 광기에 가까웠다. CPR 구령, 울부짖음, 끊이지 않는 음악 소리, 그리고 휴대폰 카메라의 셔터음. 절망과 환희, 구조와 관음이 한꺼번에 뒤섞여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빌었다. 제발 꿈이기를. 눈을 뜨면 다시 따뜻한 호텔 침대이기를. 그러나 눈을 뜰 때마다 내 손 아래에는 또 다른 젊음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가고 있었다.
가장 잊지 못하는 얼굴이 있다. 안경을 쓴 스무 살 남짓의 청년. 나는 거의 30분 동안 그의 가슴을 눌렀다. 지쳐 쓰러진 시민 대신 또 다른 시민이 달려와 내 손길을 이어갔다. 우리는 필사적이었다. 그리고 잠시, 정말 잠시 그의 맥박이 돌아오는 듯 보였다. “돌아왔어요!”라는 외침에, 희망은 번개처럼 스쳐갔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그의 심장은 다시 침묵했고, 다시는 깨어나지 않았다.
그 순간, 내 손끝이 무너졌다. 나는 그 위에 앉아 모든 힘을 잃었다. 파란 담요로 덮인 수많은 젊은 주검들이 눈앞에 줄지어 있었다. 그들은 더 이상 누군가의 이름이나 꿈이 아니었다. 그저 늘어나는 숫자가 되어갔다. 그리고 나는 그 숫자를 막아내지 못한 무능한 증인이었다.
3. 비현실의 심연
병원에서의 죽음은 예측 가능했다. 환자의 상태를 설명하고, 가족에게 작별의 시간을 주며, 존엄이라는 최소한의 틀을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그날 밤, 이태원의 죽음에는 아무런 맥락도 절차도 없었다. 웃고 떠들던 젊음이 몇 분 만에 소멸했다.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삭제’였다. 전등 스위치를 내리듯, 한순간에 꺼져버렸다.
나는 회의감에 휩싸였다. 내가 지금 하는 이 CPR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미 멈춰버린 심장을 향한 기계적 압박은 환자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의 무력감을 가리기 위한 자기 위안인가. 나는 무너졌다. 죽음을 담담히 직시하던 이성은, 이 무차별적이고 비논리적인 죽음 앞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4. 경계에 서서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새벽이 짙은 시간이었다. 밤새 현장을 휘감았던 광기와 혼돈은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에 무거운 침묵만 내려앉았다. 구급차는 마지막 환자와 주검을 싣고 떠났고, 거리에 남은 것은 짓밟혀 버린 신발, 부서진 휴대폰, 끊어진 목걸이 같은 사소한 잔해뿐이었다. 그것들은 마치 전쟁의 유물처럼 땅 위에 흩어져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손과 무릎은 아스팔트의 차가운 감촉으로 굳어 있었고, 온몸은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내 머릿속을 스쳐 가는 것은, 손바닥에 남아 있던 심장들의 마지막 떨림, 그리고 차가운 침묵이었다.
나는 의사로서 늘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날 밤 나는 보았다. 그 경계는 너무나 허술했고, 종이보다 얇았다. 몇 분 만에 환희는 비명으로, 축제는 학살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경계가 무너진 자리에서, 인간은 무력하게 스러져갔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 세상은 똑같았지만 나의 눈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화려한 로비, 안락한 침대조차 기만처럼 느껴졌다. 이토록 평온한 일상 바로 곁에, 참혹한 지옥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짓눌렀다. 우리는 안전한 땅 위에 서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얼음판 위를 걷고 있는 것 아닐까.
그날의 비극은 내게 지워지지 않을 상처다. 눈을 감으면 비명과 사이렌이 환청처럼 들리고, 창백한 얼굴들이 어둠 속에 떠오른다. 그러나 그 고통 속에서 나는 역설적으로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죽음은 허망하고 쉽게 다가온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눈부시게 소중하다.
그날 밤 내가 필사적으로 붙잡으려 했던 것은 단순한 심장 박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이 아직 살아내지 못한 시간, 이야기, 꿈과 사랑이었다.
나는 여전히 의사로서 죽음을 마주한다. 그러나 이제, 환자의 숫자 너머에서 그들의 세계를 본다. 그리고 다짐한다. 단 한 줌의 생명이라도 끝까지 지켜내겠다고. 그것이 고요와 아수라의 경계에서 스러져간 젊은 영혼들에게 내가 바칠 수 있는 유일한 속죄이자, 살아남은 자로서의 무거운 책무일 것이다.
그날 밤의 기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내 남은 생으로 써 내려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