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사수필문학상
수필은 마음의 산책입니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이 숨어있다. - 피천득의 '수필'중에서
꽃을 든 남자
- 연도2025년
- 수상은상
- 이름선자연
- 소속온유한정신건강의학과의원
똑똑 똑, 리듬감 있는 특유의 노크소리가 울렸다. 생각날 때 오겠다며 예약은 하지 않지만, 한 달에 한 번은 꼭 들르는 환자. 올 때마다 초진만큼의 시간을 들여야 하는 그였다. 검게 그을린 얼굴, 작업복차림의 투박한 손에 오늘은 어쩐 일로 큼직한 장미 꽃다발이 안겨있었다. 불쑥 내미는 그의 손에서 진한 꽃향기가 배어나왔다.
“선생님, 제가 오늘로 병원에 입원한 지가 딱 3년이에요. 단주 3년 기념으로 생각해보니 선생님이 우리 딸 다음으로 제일 고마운 사람이라서요.”
퇴원하자마자 재발할 줄 알았던 그가 3년을 버텼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가장 고마운 사람이 나라는 게 더 의아했다. 병동생활과 투약, 퇴원과 외래방문까지 무엇하나 내 권유를 들은 적이 없던 고집불통이 아니던가. 생전 처음 중년의 환자에게 뜻밖의 꽃을 받고 멋쩍어진 내 표정과 의문부호를 읽었는지 그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선생님은 저 사람 온통 제멋대로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저는 선생님한테 기다림이 뭔지 배웠어요.” 기다림이라. 그 단어가 수수께끼처럼 낯설었다.
단주 11년 경력에, 재발 전까지 자조모임 리더를 지낸 그는 이름난 병원들을 두루 거친 베테랑 환자였다. “병원 프로그램은 무수히 많이 해봤고 선생님이 무슨 말씀하실 지도 다 압니다, 저는 제 방식대로 하겠습니다” 라며 입원 첫날부터 선언을 했다. 하루 종일 헬스장에서 지내는 통에 회진 때도 따로 찾아야 했고, 약에 의지하면 안 된다면서 아예 처방도 하지 말라 못을 박았다. ‘얼마 안가 어떻게든 뛰쳐나가겠구나, 처절히 깨져서 돌아오면 그때는 치료세팅을 제대로 할 수 있겠지.’ 나는 회피라 쓰고, 전략적 후퇴라고 읽는 소심한 선택을 했다. 정면승부로 얻을 승산이 없어 보였고, 무엇보다 환자의 기세에 강대 강으로 맞설 엄두가 나지 않았다. “환자분 말씀대로 해드릴 테니 대신 잠이 안 오거나 불안하시면 꼭 알려주세요.” 나는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라는 말이 혀끝에 맴돌았지만, 환자를 돕고 싶다는 원칙만 전달한 뒤 물러났다. 나는 그렇게 줏대 없는 치료자가 되었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주말을 앞둔 금요일 오후에 간호사실에서 급한 연락이 왔다. 그는 내가 퇴근하기 전에 꼭 할 얘기가 있다며 면담요청을 했다는 전갈이었다. 나는 드디어 기회가 왔구나 싶었다. 면담만큼은 내 주도하에 해보리라 다짐하며 일부러 병동 면담실이 아닌 진료실로 환자를 불렀다. 곧 조용한 복도에서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가까워지더니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그가 들어왔다. 진료실 안의 공기가 삽시간에 무거워졌다. ‘면담이 아니라 싸우러 온 건가?’ 나는 비상벨 위치를 손으로 더듬으며 침을 꿀꺽 삼켰다. 나는 덩치 큰 남자직원에게 방 밖에서 대기해달라는 메시지를 보낸 뒤에야 면담을 시작할 수 있었다.
“머릿속이 터질 것 같아요.” 그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입원 직전 여자 친구에게 배신을 당했다, 빌려준 돈도 다 떼이게 생겼다며 욕을 내뱉었다. “술이 문제가 아니라 그동안 쌓아온 게 다 엉망이 됐는데, 여기 갇혀서 단주니 평온한 마음이니 백날 귀에 떠든다고 뭐가 들리겠어요. 칼을 들고 찾아가서 다 죽이고 나도 죽겠다는 생각뿐이에요.” 그는 선생님이 딱 사흘만 밖에 내보내주면 차분하게 매듭을 짓고 돌아오겠다, 나도 내가 겁이 나니까 딸이랑 동행하겠다, 선생님께 피해 안 가게 혈서라도 쓰라면 쓰겠다고 했다.
‘그럼 그렇지, 퇴원이나 외박요구가 아니면 나를 먼저 찾을 리가 없는데.’ 나는 화려한 그의 단주경력에 가려, 닳고 닳은 중독자의 실체를 미처 보지 못했다.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환자분, 병원에 여러 번 입원해보셔서 다 아시잖아요.” 나는 그가 내게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면서 짐짓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자해와 타해의 위험, 금단증상, 중독자의 이분법적 사고와 충동조절 장애.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용어를 이용해 그를 감정적으로 자극하지 않으려 애썼다. 나는 퇴원은 어렵지만 원활한 일처리를 위해 면회와 전화사용을 최대한 돕겠다, 대신 하루 약 한 알, 프로그램 하나 참석이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두 시간 가까운 실랑이 끝에 그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스름한 저녁 터덜터덜 집을 향하다 문득 생각이 스쳤다. 어쩌면 처음부터 정말 나가겠다는 게 아니라 그저 벼랑 끝 전술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주말은 고스란히 가을장마에 잠겼다.
새로 온 환자가 주치의와 담판을 지어 벌써 이것저것 허용이 됐다는 소문에 다른 환자들이 동요할까, 나는 다음날부터 마음을 졸였다. 어렵사리 얻어낸 약속도 며칠 만에 무용지물이 되었다. 하지만 그 날의 성과와 차담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는 몇 번 더 진료실에 다녀갔다. 선생님 성의를 봐서 몇몇 시간에 참여해봤지만 형편없었다, 어떤 간호사는 태도에 문제가 많다는 식의 불평을 주로 쏟아냈고, 나는 말문이 막혀 입을 떼지 못했다. ‘안 좋은 말을 들은 날에는 꼭 귀를 씻었다’는 영조의 일화를 따라하며 쓴웃음을 지어본 날도 있었다. 나뭇잎이 다 떨어져버린 앙상한 나무들 사이로 시린 바람이 부는 가을날이었다.
한 달 후, 치료의 첫 단추도 제대로 꿰지 못한 채 그는 퇴원했다. 꼭 다시 오겠다는 인사를 의례적인 말로 여겼는데, 그는 예상을 뒤집고 일주일 만에 나타났다. 약은 이제 필요 없다며 통보하는 건 여전했지만, 그의 반갑게 웃는 표정은 처음이었다. 이전보다 조심스러운 걸음걸이, 똑똑 똑 진료실 문을 두드리는 그의 노크소리는 그렇게 3년간 이어졌다.
석 달쯤 지난 한겨울, 한 차례 불안한 고비가 찾아왔다. “선생님, 제가 사실 어제도 병원에 다녀갔어요, 퇴근하고 안 계신 줄 알면서도 하도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선생님 진료실을 한참 보다 갔어요” 했다. 마음이 힘들 때 술집 대신 병원으로 향한 건 대단히 어렵고 훌륭한 선택이라는 내 말에, 차라리 병원에서 겨울을 나는 것도 괜찮겠다며 그가 희미하게 웃었다. 입원에 대해 뜻밖에 호응하는 그의 간절함이 느껴져 나는 순간 먹먹해졌다. 더 자주 찾아오도록 신신당부를 했지만, 그는 역시 자신의 페이스를 고수했고, 그 겨울 나는 환자의 재발소식이 들려올까 조마조마했다.
그렇게 고비를 넘기고 나자 그는 하루하루가 감사하다, 모두에게 미안하다, 내가 참 부족했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때 선생님이 권해준 책, 이제야 사서 읽었다고 보여주었고, 선생님 표정이 돌아가신 큰 누나를 닮았다는 열없는 말도 했다. 2년쯤 지났을 때, 환자의 딸 결혼식이 열렸다. 그는 사이다를 들고 건배를 외치는 게 생각보다 괜찮더라는 농담을 하다 “아빠 손을 잡고 입장할 수 있어서 고맙다고 딸이 우는데, 아, 내가 단주하기를 참 잘했구나 싶었어요” 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나는 처음으로 그에게 휴지를 건넸다. 어느새 면담시간도 30여분 안쪽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그리고 오늘. “그때는 선생님께 참 죄송했어요. 제가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많이 했을 거예요. 제정신이 아니어서 잘 기억도 안 나요. 인정하기 싫었지만, 저도 제 잘못이라는 걸 알긴 알았어요. 그런데도 선생님이 아무 말씀 안 하셔서 그것만 기억에 남습니다.” 내가 침묵을 지키며 인내한 시간이 사랑과 정성의 발로는 아니었다. 술에 취한 환자가 앙심을 품고 의사를 찾아오더라는 흉흉한 소문들이 두려워 몸을 사렸을 뿐이고, 그의 입이 닫히고 귀가 열릴 때까지 기운을 아끼며 기다렸을 뿐이다. 그런 나에게 그가 경청과 포용을 느끼고 마음이 열렸다면 그건 스스로 얻어낸 그의 몫이 아닐까. 가만히 장미꽃을 들여다보았다. 꽃이 시들더라도 오늘은 영원할 것처럼 믿고, 나는 오늘의 물을 주리라. 병동을 향하는 창문 틈으로 가을 햇살이 스며들어 꽃잎이 반짝거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