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사수필문학상
수필은 마음의 산책입니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이 숨어있다. - 피천득의 '수필'중에서
나를 왜 살려냈나요?
- 연도2025년
- 수상은상
- 이름박민
- 소속유성선병원
신경외과 전공의 2년 차 시절, 의국에 윗년차가 비게 되면서, 나는 남들보다 조금 일찍 집도의로서 메스를 잡게 되었다.
내 첫 수술 환자는 40대 남성이었다. 아파트 13층에서 뛰어내렸지만, 추락 도중 큰 나뭇가지에 걸려 기적처럼 목숨을 건진 분이었다. 뇌 경막외 출혈로 의식은 혼미한 상태였지만, 다행히 전반적인 상태는 생각보다 양호했다. 응급실 한쪽에서 아내와 어린 아들은 불안에 떨며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나는 자살 시도의 경우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수술비가 많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을 조심스럽게 설명했고, 아내는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결국 동의서에 사인했다. 그렇게 나의 떨리는 첫 수술이 시작되었다.
수술 전, 나는 CT 영상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여다보았다. 절개 범위를 정하고 출혈 부위를 예측하며 혹시 놓치는 것은 없는지 계속 생각했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한 방안을 머릿속으로 여러 번 시뮬레이션했다. 반복적으로 ‘할 수 있다’라고 되뇌며 손끝의 긴장을 풀려 애썼다.
수술복으로 갖춰 입고 수술방에 들어서자 다시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마취가 시작되고, 모니터에 숫자들이 떠올랐다. 나는 설렘과 긴장이 뒤섞인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환자의 두피에 메스를 댔고, 미리 그려둔 선을 따라 절개해 나갔다. 전동 드릴과 톱의 진동을 손으로 누르며 두개골을 열자 순간 피가 솟구쳤고, 나는 침착하게 흡입기로 피를 빨아내는 동시에 지혈했다. 봉합사로 피부를 꿰매는 마지막 순간까지, 내 마음은 한 번도 평온해지지 않았다.
수술이 끝나고, 결과는 CT 촬영으로 확인해야 했다. 나에게 그 CT 영상은 ‘성적표’나 다름없었다. 화면에 영상이 한 장씩 올라올 때마다 가슴이 철렁했다. 다행히 화면 속 뇌는 깨끗했다. 출혈은 말끔히 제거되었고 다른 손상도 보이지 않았다.
수술은 성공이었다. 그제야 나는 깊은숨을 내쉬며 긴장을 풀 수 있었다. 환자의 아내에게 다가가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아내의 표정에는 안도감보다 걱정이 번져 있었다.
의국으로 돌아오니 동료들이 환하게 웃으며 축하해주었다. 모두 이른 시기에 첫 수술을 훌륭하게 마쳤다며, 내가 좋은 신경외과 의사가 될 거라며 축복해주었다. 그렇게 나의 첫 수술은 기쁨 속에서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중환자실에서 전화가 왔다. 환자가 하루 만에 의식을 회복했고, 나를 다급하게 찾는다는 소식이었다. ‘살려줘서 고맙다고 하려나?’ 하는 기대감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내 손으로 한 사람의 생명을 살렸다는 생각에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제야 진짜 의사가 된 것 같았다.
그리고 환자에게 다가가 “괜찮으시죠?” 하고 말을 건네려던 순간, 그의 첫마디가 나를 얼어붙게 했다.
“나를 왜 살려냈나요?”
그는 원망이 가득한 말들을 쏟아 냈다.
“왜 마음대로 수술한 거요? 난 돈이 없어서 자살한 건데, 살려놓고 수술비 내놓으라면 어쩌라는 거요?”
나는 보호자의 동의를 받고 수술했으며, 자살 시도에는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미리 설명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그 여편네가 아무것도 모르고 동의한 것”이라며, 치료비를 알면 기절할 거라고 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이런 원망을 들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는 정말 분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계속 말을 이었다.
“선생님은 이런 데서 편하게 일하니깐 모르겠지만, 사람이 자살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요? 내가 거기서 뛰어내리려고 몇 번을 시도했는데. 그게 얼마나 무섭고 힘든데, 나보고 다시 그걸 하라는 거요.”
그는 눈물을 글썽이며 그때를 상상하는 듯했다. 그리고 물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산 겁니까? 13층에서 뛰었는데.”
나는 위층에 분 바람에 몸이 날아가 큰 나무에 걸리면서 머리와 허리만 다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숨을 쉬며 “그건 생각 못 했네… 아무튼, 선생님 때문에 우리가 받을 사망 보험금만 적게 받게 생겼소”라고 덧붙였다.
성공적인 수술로 그의 생명을 연장한 것이, 그에게는 더 큰 고통을 안겨준 셈이었다.
나는 쭈그리고 앉아서 벗겨질 뻔한 구두끈만 다시 묶을 뿐이었다.
일주일간의 중환자실 입원치료비는 2천만 원 정도 나왔고, 그의 아내는 그 뒤로 연락이 닿지 않았다. 환자는 일반병실로 옮겨진 그 날 밤, 수액을 스스로 빼고 실밥도 풀지 않은 채 도망갔다. 나는 ‘그래도 어쨌든 수술은 잘 됐으니 된 거 아닌가’라며 애써 자신을 위로했다.
며칠 뒤, 응급실에서 연락이 왔다.
“선생님, 며칠 전에 선생님이 수술했던 환자 같은데, 의식이 없습니다.”
급히 내려가 보니 그 환자는 심폐소생술을 받고 있었다. 이번에는 아파트 7층에서 콘크리트 바닥으로 뛰어내렸다고 한다. 보호자는 여전히 연락이 닿지 않았다.
내가 멍하니 서 있자, 응급실 전공의가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그 순간, 나는 의사들이 하는 심폐소생술이 잔인하게 느껴졌다. 어떻게든 떠나려는 사람을, 갈비뼈가 부서지게 심장을 누르며 억지로 붙잡고 있는 듯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는 사람의 마지막 길을, 의사에게 가로막을 권리가 있는 걸까? 환자 스스로 선택한 마지막 자유를, ‘의사’라는 이름으로 빼앗아도 되는 걸까?
나는 “심폐소생술 그만합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응급실 의료진들은 모두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며 멈추지 않았다.
“선생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의사가 어떻게 환자를 포기해요.”
“자살 시도여도 일단 살리고 봐야죠.”
“DNR (심폐소생술 포기) 동의서가 없잖아요. 선생님이 나중에 책임지실 겁니까?”
그들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나는 그들의 필사적인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삶을 포기하려는 환자의 의지가 더 강했는지, 환자는 결국 삶을 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의 성공적이었던 첫 수술은, 환자의 죽음으로 끝이 났다.
나는 분명 환자를 살려냈는데, 그는 왜 다시 죽음을 택했을까. 그가 바라던 '살아있음'은 무엇이었을까.
돌이켜보면, 당시 나는 환자의 사정을 깊이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다. 내게 ‘사람을 살린다’는 것은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는 일, 즉 심장을 뛰게 하고 수술을 성공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환자가 원했던 ‘살아있음’은 전혀 달랐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삶을 이어나갈 수 있는 현실적인 토대, 나아가 스스로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자유였다.
그 차이를 깨닫고서야 의사로서 내가 얼마나 편협했는지 알게 되었다. 붙잡은 생명이 때로는 환자와 가족에게 더 큰 짐이 되기도 한다. 의료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환자의 삶이 버텨낼 힘을 잃었다면, 과연 그를 살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 ‘수술이 끝나면 의사의 역할도 끝난다’라고 믿었던 나의 확신은, 환자의 현실과 절망 앞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뇌 질환으로 무너진 환자와 가족들이 내 앞에 앉아있다. 예전 같으면 CT만 들여다보며 수술이 잘 되었다고만 설명했겠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다. 그들의 사정을 듣고,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고 조언을 해준다. 그것이 꼭 의학적으로 ‘사람을 살리는 일’이 아니어도 좋다. 어디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어떤 길이 그 가족에게 덜 고통스러울지를 함께 찾아 나선다.
나에게 ‘사람을 살린다’라는 것은 이제 수술의 성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제 나는 안다. 환자의 삶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무너진 삶을 다시 이어갈 길을 함께 찾아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