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사수필문학상
수필은 마음의 산책입니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이 숨어있다. - 피천득의 '수필'중에서
구원의 손길
- 연도2025년
- 수상동상
- 이름김보규
- 소속서울아산병원
구급차를 타고 환자 한 명이 응급실로 실려 왔다.
“20대 남자 mental change(의식 변화) 환자인데요. 지금은 drowsy(기면 상태)에요. 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웠다고 본인이 직접 신고했거든요….”
구급대원은 한참 동안 환자에 대해 인계하고는 조심스레 이런 말을 덧붙였다.
“선생님, 그런데 이분이 사기 가해자로 조사받던 분이더라고요. 경찰분들도 아마 곧 오실 거예요.”
감옥에 가게 될까 두렵기도 하고 피해 금액을 배상할 길도 막막해 보이니 처지를 비관하며 죽으려 했지만, 막상 무서운 마음에 119로 신고했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한동안 잊으려 노력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응급실에서 일하는 것이 좋았다. 환자의 심장이 다시 뛸 때면 마치 내가 의학 드라마 속 멋진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았다. 여느 때처럼 치열한 근무를 마친 어느 날, 집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벨이 울렸다. 상대방은 권위 있는 목소리로 자신이 검찰 수사관이라고 밝혔다. 헛소리라며 끊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무언가에 홀린 듯 그 말을 따라갔다.
그렇게 나는 범죄자가 되었다. 웹사이트에 생년월일을 입력하니 내가 저지르지 않은 범죄가 소상히 출력되었다. 내 명의로 된 계좌가 조직적으로 성매매를 하는 일당의 본거지에서 발견되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의사 면허 또한 당연히 취소될 것이라는 협박은 덤이었다.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모두가 나를 백안시할 것이 틀림없었다. 불길한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이어졌다.
보이스피싱 일당은 내게서 압수한 현금카드를 통해 내 계좌에서 돈을 인출하는 방식으로 무혐의 입증을 진행할 것이라 밝혔다. 지금으로서는 너무나도 허무맹랑한 그 말이 그 당시의 내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들에 따르면 모든 돈이 인출되고 무혐의가 입증되기까지는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고, 그동안 나는 피의자로서 모든 행동을 그들에게 보고해야만 했다. 직장을 계속 다니는 것은 허락되었지만 그 밖의 모든 자유는 박탈당했다. 퇴근 후에 안식을 누렸던 나만의 안락한 공간은 교도소의 독방으로 변모했다. 무채색의 천장과 벽으로 둘러싸인 세 평 남짓한 방에 갇혀 작은 창 너머의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 속에서 시간은 지독히도 느리게 흘렀다.
응급실에서는 어김없이 사람을 살리려 애썼다. 한번은 심폐소생술 이후 살아난 환자가 감사 인사를 전하러 병원에 찾아왔다. 이제는 밥도 잘 먹고 걸어 다닐 수도 있다며 모든 게 선생님 덕분이라는 과분한 말을 내게 전했다. 직장에서 나는 여전히 환자가 병마와 맞서도록 돕는 숭고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러나 병원을 나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존경받던 선생님은 범죄에 연루된 피의자가 되어 있었다. 나는 변하지 않은 것 같은데 범죄자라는 보이지 않는 꼬리표를 달고 나니 어느새 내가 아닌 그 단어만이 나를 규정하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모두가 환자에게 아픈 곳이 있지 않은지 물었지만, 불행히도 그곳에서 내가 맡은 역할은 환자가 아니었다. 환자의 슬픔을 아무리 많이 건져 내도 정작 내 아픔에 관심을 두는 이 없었다. 누구에게도 속내를 털어놓지 못한 채 나는 속으로 점차 곪아갔다.
그렇지만 응급실에서 일하는 것이 싫지만은 않았다. 멈췄던 환자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할 때 그 고동에 귀를 기울이며 그에게 다시 안온한 내일이 찾아오기를 염원했다. 아무리 애써도 심장 박동이 돌아오지 않는 환자를 마주하며 치열하게 살아왔을 그의 인생에 묵례를 보냈다. 그 순간에는 잠시나마 모든 번뇌가 사라졌다. 삶과 죽음의 문제 앞에서는 그 어떠한 고민도 퇴색되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내게 몸소 보여주었다. 나는 의사도, 범죄자도 아닌 한 명의 사람으로서 그 앞에 살아 숨 쉬고 서 있었다. 무기력함과 슬픔은 거칠게 요동치는 맥박에 휩쓸려 나갔고, 강렬한 카타르시스가 그 빈자리를 채웠다. 때로는 사람의 아픔을 마주하며 그들의 삶을 지탱하는 일이 나를 지탱하는 길이 되기도 했다.
마침내 내 계좌에서 돈이 전부 인출되던 날, 나는 보이스피싱 일당이 나를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류 몇 장에 서명함으로써 내 범죄 혐의는 완전히 해소되고 계좌 잔액은 복구될 것이었다. 처음 이상함을 느낀 건 스마트폰이 원격으로 초기화되었을 때였다. 그들과의 연결고리는 완전히 끊어졌다. 처음에는 부정했다. 무언가 착오가 있을 것이라고 끊임없이 되뇌며 그들이 오기만을 줄곧 기다렸다. 사태를 직시한 건 그로부터 두 시간이 지난 뒤였다.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는 희망은 산산이 부서져 깊은 절망이 되고야 말았다.
그로부터 몇 개월이 훌쩍 지난 어느 겨울날, 보이스피싱 일당을 추적할 방법이 더는 없으므로 수사가 종료된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모든 재산을 탕진하다 못해 빚까지 지게 되었는데 그 피해를 보상받을 길은 전혀 없었다. 나는 극심한 자책과 생활고에 시달리며 힘든 시기를 보냈다. 끔찍했던 기억을 털어내려 부단히 노력했지만, 눈을 붙일 때마다 그날의 악몽이 거듭 재생됐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도 서늘했다.
“선생님, 환자분 의식 돌아왔어요. 산소포화도도 잘 나오고 있고요.”
간호사의 목소리가 내 상념을 깨웠다. 환자는 다행히 금방 정신을 차렸다. 내심 순조롭게 회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못된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 고개를 들었던 터라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무슨 말을 할지 고민하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고 그에게 다가갔다. 그 옆에서는 보호자가 환자의 손을 잡고 연신 다행이라는 말을 건네고 있었다.
“환자분, 정신이 좀 드세요? 어디 불편하신 데는 없나요?”
그제야 그들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두 쌍의 눈동자를 마주하니 생각보다 술술 말이 나왔다.
“번개탄을 피워서 일산화탄소에 중독된 건데, 산소 치료를 했어요. 뇌 MRI 상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뒤늦게 뇌에 손상이 올 수도 있어서 앞으로 경과를 조금 지켜봐야 해요.”
“…네.”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그가 대답했다. 나는 그제야 그가 떨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걱정과 불안으로 얼룩진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깊게 파인 눈동자, 축 처진 어깨…, 나는 그의 몸 곳곳에서 그가 미처 돌보지 못한 연약한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그의 손을 잡고 서툴게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금방 정신을 차려서 다행이에요. 많이 힘드셨죠? 저도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던 적이 있거든요. 제가 다시 잘 살 수 있을까 걱정도 많았는데…. 그래도 결국에는 사람 덕분에 살아지더라고요. 환자분도 물론 힘든 일이 많겠지만…, 이렇게 옆에 어머니도 계시고 저도 열심히 할 테니까 같이 힘내봐요. 병원에서는 우선 마음 편히 계시고요.”
맞닿은 손은 따뜻했다. 뒤늦게 환자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경찰이 그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바라봤다. 그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건 도망쳐서 구원을 얻을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언제까지고 삶을 외면할 수는 없다.
나는 여전히 응급실에서 일하고 있다. 의사라는 이름표와 범죄자라는 꼬리표를 넘어, 흉터를 지닌 그저 한 사람으로서 상처를 입은 다른 이의 아픔을 어루만진다. 고통스러운 기억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상처를 딛고 나아가고 있다.
앞으로의 삶에서 얼마나 더 많은 역경을 마주칠까. 때로는 깊은 상처를 입고 지쳐 쓰러지기도 할 것이다. 끝내 죽음을 맞이해 이 여정을 마치리라. 그러나 이 순간만큼은 내 손을 붙잡고 누군가 다시 일어설 것이고, 맞잡은 온기 속에서 나 또한 살아가고 있다. 오늘도 나는 이곳에서 나와 세상을 향해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