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사수필문학상
수필은 마음의 산책입니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이 숨어있다. - 피천득의 '수필'중에서
구원의 실마리
- 연도2025년
- 수상동상
- 이름최세훈
- 소속서울아산병원
그녀가 나에게 구원의 실마리를 보여주었다. 그녀를 만난 이후, 죽음을 느낄 때마다 그녀의 선물을 떠올린다.
예전에는 수술의 사망률이 훨씬 높았다. 친지의 죽음도 가까이 겪은 적이 없던 내가 흉부외과 전공의가 된 순간부터 갑자기 많은 죽음을 보게 되었다. 죽음이 흔하여 오히려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다. 의사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어렸을 때에는, 환자가 여럿 내 눈 앞에서 죽는다 해도 내 판단과 술기에 문제가 없었다면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아야 한다고 믿었다. 만약 오늘 낮에 죽은 환자와 똑같은 환자가 오늘 밤 응급실에 온다고 해도 똑같이 치료할 정도는 되어야지 흉부외과 의사로서 평생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느냐고, 죽음에 초연한 것이 흉부외과 의사로서의 덕목이라고 쉽게 말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 언젠가 아쿠아리움에서 인어 복장을 한 여성이 물 속에서 공연을 하다가 정신을 잃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이것도 공연인가 숨죽이던 관람객들이 곧 비명을 지르며 공포에 휩싸였다. 그들의 모습이 나와 같다고 느꼈다.
나는 수족관 유리 벽의 이쪽에 있고 저쪽 물 속에는 환자들이 있다. 대부분은 물을 벗어나 이 쪽으로 돌아올 수 있지만 몇몇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의사는 유리 벽 밖에서 몸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은 채로, 그 죽어가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본다. 이젠 익숙해져 비명을 지르지는 않지만 영혼에 상처가 나는 것을 막지도 못한다. 눈 앞에서 익사하는 생명을 보면서도 투명한 벽을 넘어서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한 번이라도 절절히 경험한다면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아마도 죽음과 가까운 곳에서 환자를 보는 동료들 모두 각자 자기를 보호하는 비법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노력은 결국 실패한다. 타인의 죽음에 무감각해진다는 것은 (성공할 수도 없지만 비록 성공한다 하더라도) 인간으로서의 중요한 무언가를 잃는 것을 의미하기에 역시 괴로울 뿐이다. 그렇게 죽음을 보며 괴롭고 죽음이 괴롭지 않아 괴로웠던 시기에 유미(가명)를 만났다.
작년에는 나도 응급실 당직을 서야 했다. 기흉 환자의 흉관을 넣어달라는 연락을 받고 환자의 의무기록을 확인하였을 때, 젊은 여성, 완치 가능성이 없는 다발성 폐전이, 재발성 기흉이라는 점 등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흉관을 넣을 곳을 확인하려 영상을 열어보니 ‘이렇게 두꺼운 흉벽은 처음 보는걸’ 할 정도의 병적인 비만. 응급실로 가며 나는 띠동갑 아래인 그녀에게서 질식, 익사, 죽음의 냄새를 맡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내 구원을 만났다.
기흉을 발견한 것은 1주일 전. 하지만 예전에 흉관을 넣으면서 큰 고생을 하였던 유미는 입원도 하지 않겠다며 버티다가 하필 내 당직 때에 응급실로 왔다. 기흉으로 숨이 찼는지, 아니면 기흉이 늘어날까 가만히 참았던 것인지, 한참 못 씻은 태가 났던 것에 반해 장난기 어린 표정이 살아있었다. 사신에게 몸이며 혼이며 반쯤은 잡아먹혔으리라 예상했던 나는 환자의 이름을 다시 확인하여야 했다. 유미는 야심 차게 계획했던 탈선이 어이없이 실패한 어린아이 마냥 멋쩍게 웃으며, “아, 꼭 넣어야 하죠? 싫은데……” 했다. 흉관을 넣을 때는 아플까 걱정했고 다행히 순조롭게 거치된 후에는 미루던 숙제를 끝낸 듯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모르는 걸까, 자기 상태를? 하지만 넌지시 던진 질문들을 통해 그녀는 스스로의 상태를 충분히 알고 있는 인텔리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해진 미래-죽음-에 압도되지 않는 사람을 오랜만에 만났다.
‘현재만 사는 사람인가? 그래, 그것이 인생의 무게를 가볍게 해준다면 아직 오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할 필요도 없는 거겠지’ 하고 편하게 생각했다.
종양내과로 입원하였던 유미를 2주 정도 지나서 흉부외과 외래에서 다시 만났다. 그 사이 유미를 몇 번 생각했던 나는 이미 호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현재를 어둡게 하지 않는 건강한 사람. 하지만 유미가 “입원해 있는 동안 선생님을 위해서 만들었어요” 하면서 외래의 밝은 형광등 불빛 아래로 빨강, 노랑, 초록, 강렬한 원색을 반사해내는 과일 모양의 키링(key ring)들, 사과, 레몬, 딸기를 꺼내는 순간에는 정말로 압도당할 수 밖에 없었다. 솜을 단단히 채워 통통하게 만든 맥반석 달걀 크기의 밝고 따뜻한 키링에서 비현실의 이질감을 느꼈다.
아프고 난 후에 뜨개질로 키링을 만드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선물을 받는 사람들이 기뻐해주는 것이 좋아서요.”
현실만 살기에 용케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완전한 오해였다. 유미는 누구보다 미래를 바라보았다.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시간을 나눠 담아 자기 뒤에 남을 친구들에게 기쁨의 선물을 보낸다. 천연덕스럽게 밝은 강렬한 원색의 과일들. 놀랍도록 선하고 아름다운 그 속에는 죽음의 운명이 담겨있지 않았다.
의료진을 포함한 주변인들 모두가 그녀를 보며 미리 애도의 표정을 지었던 것일까? 이 키링은 그녀의 대답으로서 유미와 잘 어울렸다. 나 아직 살아있다고, 왜 벌써 죽은 사람 취급이냐고, 그렇게 애처로움을 애써 감추려는 눈빛으로 자기를 보지 말라고, 투덜대는 듯 했다. 나는 가고 너는 남지만 너를 향한 내 이 작지만 밝은 마음을 같이 느끼자고 말한다. 아, 참 찬란한 유언이구나!
수족관의 이미지는 바뀌었다. 유리 벽 너머의 인어가 창문에 서있는 우리들에게 아껴두었던 숨을 훅 불어 커다란 하트 모양의 거품을 만들어 낸다. 웃으며 손을 흔들다가 등을 돌리고 커다란 인어 꼬리로 물을 밀어내며 빠르게 멀어진다. 다시는 만나지 못하겠지. 인어는 저 너머 미지의 세계로 사라지고 아이는 벌써 그리워한다. 쓸쓸하고 아쉽지만 그런 헤어짐이라면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좀 더 생각하고 싶어서 키링들을 집에 가져와 서재 책상에 올려놓았다. 잠자리에 들기 전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오만 참견을 하는 늦둥이 막내딸이 때마침 아빠에게 왔다가 그것을 보고 “와, 예쁘다 저 이거 가져도 돼요?” 하더니 대답도 듣는 둥 마는 둥 가져가 버렸다.
다음 날 여명이 갓 밝아오는 새벽 출근길, 현관 입구에 미리 내어놓은 아이의 책가방에는 벌써 키링들이 매달려 아련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