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사수필문학상
수필은 마음의 산책입니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이 숨어있다. - 피천득의 '수필'중에서
거즈 아홉 장
- 연도2024년
- 수상동상
- 이름문윤수
- 소속대전을지대학교병원
“환자 전원 보내려합니다. 가다가 죽어도 가겠답니다.”
전화기 통해 다급이 외이도를 거쳐 바로 뇌 속 깊이 때린다. 이 상황을 어찌 모면해볼까 하는 간사한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이미 환자 보호자, 그 병원 의사는 주치의를 나로 바꾸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위 두 문장은 극히 일부였으며, 그보다 더한 설명이 이어졌다. 간경화 기왕력과 여기저기 출혈 소견들, 혈압 올리는 약물들과 들쭉날쭉한 혈액 검사 수치들을 전해 듣고 있자니, 이미 내 앞에서 배안 가득 수없이 피 흘리고 있는 내 환자로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전원 보내는 선생님의 한마디,
"배 안에 거즈 아홉 장 넣었습니다.”
배 안에 거즈는 예전에는 의료사고 일종인 수술 중 사용한 거즈를 제대로 제거하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최근 지혈 효과를 위해 일부러 거즈 넣는 치료 방법으로 사용한다. 동시에 ‘거즈 아홉 장’이라는 흐려진 말꼬리 속에는 아마도 거즈 아홉 장 넣고, 보호자들에게 한차례 예비 사형선고 하였다는 절박함이 나에게 전해졌다.
한 가장이 어느 날 불의의 사고로 수술 받은 후, 가족은 수술 집도한 의사로부터 가장 듣고 싶은 한마디 말은 "수술은 예정대로 잘 되었습니다. 잘 회복한다면 생명에 큰 지장 없습니다." 라는 말이다. 하지만 가족에게 처음 병원 의사는 아마도 절망의 늪에서 최악의 부정적인 상황을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예비 사망선고처럼 말이다.
가족은 그 말이 거짓이길 바라며, 반드시 살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한 시간 넘는 거리의 내가 있는 병원으로 왔다. 나는 J의 전체적인 몸 상태, 배속 상황을 떠올리며, 모니터에 보이는 절박한 숫자들, 혈액검사 결과가 한두 개씩 나오면서 동시에 여기저기 난리치고 있는 숫자들을 바라보았다. 이제 보호자를 만날 차례다. J 가족을 처음 보는 순간, 아주 오래전 전쟁 영화가 떠올랐다. 얼기설기 싸여진 짐 보따리 옆에 있는 피난민 같았다. 이미 너무나 울어버려 눈과 얼굴이 퉁퉁 부었지만, J의 아내와 아들과 딸, 세 가족은 내 입에서 희망 섞인 말 단 한마디라도 나오길 간절히 바라는 눈빛이었다.
한 시간여 전, 전화기 통해 내 대뇌에 굵게 새겨진 '거즈 아홉 장'이란 단어를 생각하며 다시 환자 뱃속을 그려보니 머릿속에 도저히 희망과 조금이라도 연관된 단어들이 떠오르지 않았다. 난 냉정했다. 그리고 잔인하게 말해버렸다.
"첫 수술 당시 너무 많은 출혈이 있었고, 기존에 앓고 계시던 간경화와 더불어 심각한 응고장애가 발생하여 출혈이 안 멈출 경우 생명이 위험한 상황입니다.”
희망의 싹을 떡잎에서 잘라버리는 말투로 말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눈물을 훌쩍이던 딸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우리 아빠...... 이제 살 수 있나요?”
아빠를 간절히 살리고 싶은 가족에게 나는 어쩔 수 없이 두 번째 예비 사망선고하였다. 다시 환자에게로 가려는 찰나, 냉정한 내 말을 듣자마자 두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지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들 눈과 마주쳤다. 아들 눈빛과 눈물은 순간 나의 본분이 죽음 문 앞에 있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사망선고, 예비 사망선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 작은 끄나풀이라도 있다면 이어 붙여서 연결시켜, 피나고 고통스러운 환자들에게 삶의 연장에 대한 희망 갖게 해주는 것이 내가 할 역할이자 동시에 잘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나게 하였다. 처치 중인 J 곁으로 가려던 나는 발걸음을 돌려,
"하지만 제가, 저뿐 아니라 모든 선생님들 힘을 모아 환자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아들은 말없이 눈물 한 방울을 더 흘리며, 고개 숙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최악의 상태에서 전투를 맞이한다. 한 번 더 예비 사망선고 하였지만, 내 스스로 내뱉은 말이 거짓이기를, 환자 운명을 바꾸기로 다시금 마음먹었다. 머릿속에 아홉 개 거즈를 항상 넣어두고 J를 바라보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조금이라도 살고자 하는 쪽으로 치료 방향키를 조율해갔다. 제아무리 이전 병원에서 집도한 수술기록지와 검사 정보가 합쳐진다고 해도 첫 수술 당시 거즈 아홉 장 넣으면서 배를 임시로 봉합한 첫 집도의사의 절박한 심정을 모르기에 환자는 자꾸만 어렵고 힘들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출혈이 무섭고, 환자 상태가 두렵기에 언제까지 거즈를 배 안에 넣고 기도만 하는 것은 외과의사 본연의 역할이 아니다. 이제 환자 살리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가는 의사 역할을 해야 한다. 바닥과 천장을 향해가던 혈액 수치들도 정상으로 조금씩 방향을 잡아가는 노력을 하나씩 하는 사이, 두 번째, 내가 집도하는 첫 수술을 결정하였다. 역시나, 출혈은 생각했던 이상으로 여기저기 심했다. 거즈 아홉 장을 하나씩 걷어내고 배 안 모든 출혈 부위들을 하나씩 확인하며 최대한 출혈을 잡는 노력했지만, 이번이 J의 마지막 수술이 되기에 무리였다. 수술을 마치고 다시 J를 중환자실 그 본래 자리로 옮긴 후, 가족을 맞이하였다.
“거즈 아홉 장으로 출혈부위 압박하고 있었습니다. 그 거즈를 빼내고 다시 지혈하는 수술 했어도, 아직 출혈이 많이 있습니다. 이번에 거즈 일곱 장을 새롭게 넣어 압박했습니다.”
온 가족은 또 다시 눈물로, 나에게 대답한다. 잠시 정적이 흐른 후, 딸은
“우리 아빠, 이제 살 수 있죠?
선생님께서 새로운 거즈 일곱 장을 넣고 수술해주셔서 살 수 있죠?”
입안에서 또 다시 대량출혈, 간경화 등이 맴돌지만, 내 입으로 꿀꺽 삼켜버리고,
“저 뿐만 모든 의료진들이 힘을 내서 노력하겠습니다. 살 가능성을 조금씩 높여가며, 생명 끈을 조금씩 늘려가겠습니다. 가족 모두 함께 힘을 내봅시다!”
그렇게 또 이틀이 지나고 배액관과 상처 사이로 나오는 출혈이 눈에 띄게 줄었다. 마지막 수술이 되겠다는 기대와 다짐으로 수술실로 향했다. 내가 직접 확인하고 압박하면서 넣었던 거즈 일곱 장을 빼내고 출혈 부위를 확인하며 하나씩 하나씩 지혈했다. 애초 간경화, 다발성 손상으로 완벽한 지혈을 기대하기는 무리지만, 처음 거즈 아홉 장을 빼었던 상황에 비해 이번이 마지막 수술이 될 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였다. 마지막까지 모든 지혈 방법을 동원하며, 장기들을 꿰매주고, 지혈 후, 배를 완전히, 완벽히 닫았다. 이번에는 아홉 장, 일곱 장도 아닌 단 하나 거즈도 배 안에 넣지 않았다. 마지막이라고 바라는 수술을 마친 후 가족과 마주섰다.
“이제 아빠 배 안에 거즈가 하나도 없습니다.
거즈가 눌러주는 압박이 아닌, 아빠 스스로 힘으로 출혈을 이겨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저 중환자실 안에서 힘내는 아빠처럼 가족 모두 힘내고, 저 또한 더 힘내서 치료하겠습니다.”
출혈 산을 가까스로 넘어가니, 간경화 뿌리에서 시작된, 대량 출혈이라는 기름까지 부어져 발생 가능한 모든 합병증들이 하나씩 나오기 시작하였다. 폐렴부터 시작하여 상처 감염, 나중에 신부전, 최악인 간성혼수 직전 상황까지 갔다. 하지만 J에게는 상처를 소독해주고, 약 주는 나와 의료진에 더해 한 시도 떨어지지 않고 지켜주고 기도해주며 사랑을 보내는 가족이 있다. 제 아무리 간경화 악성 뿌리에서 시작하여도 가족 사랑과 살고자하는 환자 의지가 더해지니, 조금씩 희망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겨울 초입에 온 환자는 한겨울, 새해 첫날을 지나 봄맞이를 함께하였다. 그 사이 환자 상태는 훨씬 나아졌고, 스스로 힘으로 밥도 먹고, 비로 가족 부축이 있지만, 조금씩 걷고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이제 나와 간단한 농담도 하는 사이가 된 J는 나에게 묻는다.
“사고 나서 OO병원에 처음 간 것은 아는데, 어떻게 이곳 병원으로 온 거죠?”
“거즈 빼러 왔답니다. 그 동네 거즈가 시원찮아서, 여기로 새로운 거즈로 갈러 왔어요!.”
헌 거즈와 새 거즈……. 역시나 무슨 영문인지를 모르는 J를 바라보며, 헌 거즈 아홉 장이 가까스로 J의 배안 핏줄기를 막고 있었던 그날 기억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어느 날, 지난 몇 달 동안 한시도 남편 곁을 떠나지 않던 부인이
“시골집에 좀 다녀와야겠어요. 이틀 비워도 되겠죠? 남편도 이제 살아났으니, 이제야 집에 복숭아나무가 걱정되네요. 복숭아나무 전정치기 하러가야겠어요.”
“환자분은 저와 딸과 함께 잘 치료해주고, 돌봐주고 있을 테니, 복숭아나무가지 잘 치료해주고 오세요. 이왕이면 불필요하게 거즈처럼 너덜한 가지들을 다 쳐내고 오세요.”
시골집에 가는 이유는 너무 오랫동안 비운 집도 보지만, 복숭아나무 가지 전정이 더 큰 이유였다. 지난겨울 오로지 남편 걱정에 온 사랑을 베풀었다면, 이제 집안 살림 밑천이자 병원비를 내고, 가족 생계를 책임질 복숭아나무에게도 사랑을 나누어줄 차례이다. 복숭아나무 전정을 통해 마치 내가 남편 배속에 거즈를 빼내며 수술하는 마음으로 부실한 나무 가지들을 정리하며 사랑을 주어, 한여름에 풍성하고 달콤한 복숭아 열매 맺기를 기원하였다.
두해에 걸쳐 내 담당 환자로 입원하였던 J는 따뜻한 봄 햇살을 맞으며 무사히 가족과 그리운 집으로 퇴원하였다. 중증외상환자를 치료하는 외상외과의사로 살면서, 내 입으로 가족들에게 너무나 가혹했던 예비 사망선고가 또다시 거짓말이 되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다시 계절이 바뀌어 무더운 여름 어느 날, 병원에 내 앞으로 복숭아 한 상자가 전해왔다. 커다란 복숭아 아홉 개와 J부부의 감사편지가 있었다. J 가족의 정성을 생각하여 복숭아 상자를 꾸역꾸역 들고 집으로 향했다. 역시나 아들과 딸, 부인은 나보다도 탐스러운 복숭아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바라보기만 하여도 너무나도 달콤하고 향긋한 복숭아가 머릿속 미각 중추 속에 이미 녹아내렸다. 아홉 개 거즈를 뱃속에 넣고, 살고자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 나를 만난 J와 J 가족. 그 아홉 개 거즈가 가족의 헌신적인 사랑이 더해져 모두 행복하게 살게 해주었고, 경이롭게 거즈는 너무나 맛있는 복숭아로 변신하였다.
나는 또다시 피와 사투하는 환자를 앞에 두고, 절망의 낭떠러지 바로 앞에 있는 보호자를 만난다. 동시에 내 입에서 거짓말이기를 바라는 예비 사망선고 순간을 또 다시 맞이한다. 하지만 나는, 아홉 개 거즈가 탐스러운 복숭아로 바뀐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있기에, 늘 하던 대로 그렇게 최선을 다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