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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은 마음의 산책입니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이 숨어있다. - 피천득의 '수필'중에서

네 손의 기도

  • 연도2021년
  • 수상대상
  • 이름조동우
  • 소속영주시 보건소 풍기읍 보건지소

돌아가신 할머니와 비슷한 연배였던 그 환자를 처음 만난 건 면허를 따기 전이었던 2016년 여름, 한 대학병원의 산부인과 수술실에서였다. 당시 나는 교수님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라다니며 책에서만 보던 것들을 실제 임상 현장에서 배워나가던, 막 병원 실습을 시작한 본과 3학년 학생이었다. 외과계 실습을 돌면 수술을 참관할 수 있는 기회가 종종 주어지곤 한다. 수술에 절대 방해가 되지 않게끔 떨어져 있되, 생생한 현장을 하나라도 눈에 더 담으며 배우는 것. 수술을 참관하는 실습 학생의 가장 큰 덕목은적극적인 병풍이 되는 것이다. 내가 참관했던 수술은 고령의 암환자에게서 자궁을 들어내는 비교적 큰 수술이었다. 수술실 한 구석에서 산부인과 레지던트 선생님 옆에 서서 마취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여느 때처럼 병풍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피부로 느껴지는 수술실 침대의 차가운 감촉 때문일까. 코가 시릴 듯한 수술실의 찬 공기 때문일까. 할머니의 얼굴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큰 수술을 앞둔 고령의 암환자의 마음을 어찌 감히 온전히 이해할 수 있으랴. 냉기가 감도는 푸른빛의 공간엔 곁을 지킬 남편도, 손을 잡아줄 자녀도 없었다. 오롯이 홀로 남겨진 채 너무나 큰 상대를 기다리는 그녀의 얼굴엔 형용할 수 없는 외로움과 불안함이 가득했다.

 

“수술 전에 수녀님이 기도해주신다 캤는데예수녀님 어디 계십니껴?”

 

가톨릭 재단의 병원답게 수술실 입구에는 수술을 앞둔 환자들을 위해 기도를 해주시는 수녀님이 계신데, 급하게 들어오면서 못 뵌 모양이다.

 

“할머니, 기도는 밖에서 하고 들어오셔야 해요. 준비가 다 끝나서 다시 나가시긴 어렵고, 얼른 마취 시작해야 합니다.”

 

 “안되는디… 기도 꼭 해야 하는디….”

 

마취과 선생님의 안타까운 대답에 급기야 할머니의 두 눈가가 촉촉해지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셨고, 할머니를 제외한 수술실의 그 누구도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다. 마취 직전까지 준비된 환자를 다시 수술실 밖으로 내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수녀님을 감염에 민감한 수술실 안으로 모시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큰 수술을 앞둔 할머니의 마음을 모두가 잘 알기에, 서로 눈치만 보며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누구 하나 먼저 깨기 조심스러운 침묵의 끝을 알린 건, 터질 듯한 불안감을 애써 꾹꾹 눌러 담은 할머니의 목소리였다.

 

“알겠습니데이…. 이제 그만 시작하이소….”

 

무슨 용기였을까.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는 할머니께 다가가 주름진 두 손을 꼭 잡았다. 두 손의 떨림을 타고 그녀의 불안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마취과 선생님께 딱 30초의 양해를 부탁드렸고, 다행히도 선뜻 허락해주셨다. 마주잡은 네 손에 아주 잠깐의 시간이 주어졌다.

 

“할머니, 제가 기도해드릴게요.”

 

가톨릭 신자가 아닌 나로선 가톨릭에서 어떻게 기도하는지도 잘 몰랐다. 기도를 마칠 때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이라고 끝내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날 뿐. 성부-성자-성령 순이 맞는지, 십자를 그릴 땐 왼쪽이 먼저인지 오른쪽이 먼저인지 헷갈렸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조금이나마 불안감을 이겨내고 부디 편안한 마음으로 수술을 잘 받으시길 진심으로 바라며, 눈을 감고 서툰 기도를 이어나갔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떨리는 목소리로 기도가 끝남과 동시에 마취가 시작되었다. 희미한 미소를 띤 채 편안하게 잠이 든 할머니의 모습을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긴장감에 땀으로 젖은 두 손을 뗄 수 있었다. 누군가 나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해준다는 것. 어쩌면 수술 직전의 상황에서 할머니가 가장 필요로 했던 작은 치료가 아니었을까.

 

수술은 다행히 잘 마무리되었다. 아직 마취에 덜 깬 채 수술실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할머니를 뵐 수 없었다. 바쁜 실습 일정에 치여 기억에서 조금씩 희미해질 때쯤, 레지던트 선생님께서 급히 나를 찾으셨다. 그 때 그 할머니께서 퇴원하기 전에 수술실에서 기도해준 의사를 꼭 만나고 싶다고 주치의 선생님께 간곡히 부탁드렸단다.

 

“아이구 슨생님, 을매나 찾았는지 모릅니더. 슨생님 기도 덕분에 지가 너무 편한 마음으로 수술 받을 수 있었다 아입니껴. 슨생님 덕분에 이렇게 수술 잘 받고 퇴원합니데이. 너무 감사합니데이.”

 

두 눈을 글썽거리며 반갑게 맞아주시던 할머니. 투박한 두 손이 이번엔 나의 두 손 위로 꼬옥 포개졌다. 따뜻한 온기가 양 손등을 감쌌다. 분명 거친 손인데 이상하리만큼 참 포근했다. 병실의 적막함을 가르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할머니는 기도를 시작하셨다. 이 두 손이 훌륭한 의술을 펼치는데 잘 쓰일 수 있게 해달라고. 무엇보다 이 두 손으로 환자들의 마음까지 어루만질 수 있게 해달라고. 그녀는 나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해주셨다. 두 손의 온기를 타고 그녀의 따뜻한 당부와 축복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가슴 한 쪽에 몽글몽글한 무언가가 차오르기 시작했고, 두 눈이 예고도 없이 뻑뻑해졌다. 아무 말 없이 그렇게 네 손은 서로가 서로를 꼭 잡고 있었다. 나의 것인지, 할머니의 것인지 모를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려 우리의 네 손을 따스히 적셨다.

 

5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아직도 본인을 의사라 소개하기가 어색한 이제 겨우 햇수로 4년 차 의사가 되었다. 더 이상 병풍이 아닌, 무언가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로 환자 앞에 설 수 있다는 사실에 늘 감사하며 계속해서 배움을 이어나가는 중이다. 이따금 연세가 있으신 환자 분들이 내원하실 때면, 그 때 그 할머니가 종종 떠오르곤 한다. 얼굴도, 성함도 가물가물하지만 우리의네 손의 기도는 언제나 선명하다. 환자의 증상과 질환에만 집중하다 환자의 마음을 세세하게 살피지 못하진 않았는지, 머리는 차갑도록 냉정해야 하지만 가슴마저 차가워지진 않았는지, 초심에서 한 걸음 멀어질 때마다 '아차' 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려보내는 기분 좋은 잔소리가 된다. 의사가 치료해야 할 것은 비단 병뿐만이 아니라 환자의 마음까지임을. 스물네 살의 의대생에게 건넨 그녀의 속삭임은 5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귓가에 멤돌고 있다.

 

오늘도 환자를 향하는 나의 두 손엔, 5년 전 주름진 두 손에서 전해진 따뜻한 온기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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