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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은 마음의 산책입니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이 숨어있다. - 피천득의 '수필'중에서

스승의 초상화

  • 연도2005년
  • 수상장려상
  • 이름유봉옥 원장
  • 소속예수병원


버지니아 주에 있는 조그마한 읍, 몬트리트에서의 초겨울 아침은 몹시 괴괴하였다. 휘휘거리는 찬바람이 추적거리는 빗방울을 흩날리며 아스팔트 위에 갈색 마른 잎들을 사각거리며 뒹굴게 했다. 분홍색 단장을 하고 눈을 굳게 감아버린 스승의 시신을 보며 영결식장에서 어린애처럼 엉엉 울어버렸다. 다시는 악수도, 정겨운 대화도 할 수 없는 아쉬움과 20년이 넘는 인연의 고리 속에 담긴 회한의 주름 때문이었다. 내가 예수병원을 선택한 것은 본과 4학년 때 두 선교사에 대한 선배의 자랑에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제2대 원장이었던 윌리 포사이드는 친구를 치료하러 오는 도중, 얼굴이 온통 일그러지고 진물이 나며 악취를 풍기는 문둥병 처녀가 길가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자기가 타고 오던 말에 그녀를 태우고 십 리가 넘는 험한 길을 걸어서 선교사 캠프로 왔다. 동료들이 코를 막고 등을 돌리며 불평했지만 그녀의 몸을 씻기고 상처에 약을 발랐으며 심지어 어깨를 부축해 화장실까지 동행했다. 마침내 모두들 감동하여 ‘참 예수를 닮은 사람’이라며 칭송했다고 한다.
또 한 분 설대위(David John Seel) 박사는 ‘암과의 투쟁전사이자 신을 닮은 세밀한 손가락으로 하나님이 건축하신 신묘한 육신 안에 발생한 병소를 깨끗이 도려내고 그대로 복원시키는 탁월한 외과의사이며, 특히 두경부 종양에 대해 최고의 권위자이고 G선상의 아리아를 연주하는 바이얼리니스트이자 주옥 같은 글을 쓰는 감상적인 문필가’라는 선배의 열변은 젊은 가슴에 순수한 꿈을 품게 하였다.
스승 설대위 박사와의 첫 만남은 인턴 면접시험장에서 이루어졌다. 훌쩍 큰 키에 단정히 빗은 머리, 이지적인 푸른 눈을 가진 그는 화상치료에 대해 브룩스 공식과 에반스 공식의 차이를 물었다. 더듬거리며 정확한 답을 못하고 있을 때 “항상 준비된 의사만이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공의 시절, 스승은 수 차례 외과의사 삼분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기술만 좋아 좋은 의사가 아니다. 품성이 나쁘면 기술을 이용한 장사꾼이 될 수 있다. 또한 품성만 좋아 좋은 의사가 아니다. 기술이 약하면 많은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술도 좋고 품성도 좋아, 그 두 가지에 ‘성실’이라는 감미료가 첨가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완전한 의사가 될 수 있다.”
나는 수련을 마치고 스텝으로 남아서 희망과 도전의 강렬한 의지를 가지고 두경부 분야의 제자가 되기를 청원하였다. 그러나 스승은 이미 택한 제자가 있다고 했다. 낙심과 좌절, 허탈과 자기연민 속에 허둥지둥 1년을 보내고 선배의 권유로 Y시로 직장을 옮겼다. 중소병원이었지만 일년 반 동안 최선을 다한 열성 때문인지 지역사회에서 ‘수술 잘하는 의사’로 인정 받고 있을 즈음 늦가을에 갑작스러운 스승의 전화가 왔다. 다시 돌아와 함께 일할 의사가 있는지를 물었던 것이다. 나는 안락한 가정, 약속된 풍요로움 때문에 망설이며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대답했다. 다음날 스승은 승용차로 7시간 걸리는 장거리를 달려와 “의사는 돈을 몰라야 한다. 더 높고 깊은 기술이 있어야 더 많은 사람에게 베풀 수 있다.”고 설득했다. 나의 밑바닥에서 잠자고 있던 지평선의 무지개 꿈이 되살아났고 스승 밑으로 되돌아오게 되었다.
아침 6시 회진, 수요일엔 전국에서 그가 설립한 종양 클리닉을 찾아오는 100명이 넘는 외래환자 때문에 저녁 늦게 끝나기 일쑤였고, 일주일에 두세 번 10시간이 넘는 두경부암 수술의 보조수로서 사생활은 물론 제대로 쉴 틈조차 없는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수술, 항암치료, 방사선치료로 인해 생각도 감정도 잃어버린, 얼굴이 붓고 머리칼이 빠지고 표정 없는 환자를 가혹하리만큼 진료하는 스승. 특히 얼굴에 자꾸 재발하는 한 피부암 환자를 한쪽 눈을 희생하면서까지 28번이나 수술하는 인내를 보면서 나는 때때로 스승이 환자를 실험대상으로 삼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의 저서 ‘하나님은 내 고통을 아시나?’에서는 최고의 정점에서 환자를 위해 홀로 결정해야 하는 괴로움을 하나님께 묻고 있다. 나는 ‘조그마한 희망이라도 있다면 그를 찾는 환자를 거절하지 못하고 몸부림쳤다’는 고통의 기록을 접하고서 어리석은 갈등을 털어낼 수 있었다. 2년 간의 눈물겨운 훈련 후에 스승이 단독으로 후두암 수술을 주셨을 때의 감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호사다마라고 얼마 있지 않아 내 인생 최대의 위기가 찾아 왔다. 갑자기 무기력해지고 구역질이 나며 식욕이 없어져 간기능 검사를 했더니 원인불명의 간 효소치가 300 이상 올라가 있었다. 절대안정이라는 처방을 받고 2개월 동안 2층 응접실에 누워 죽음에 대한 공포로 두려움에 떨었고, 절뚝거리면서도 생기 있게 걸어가는 절름발이가 부러웠다. 도저히 병세가 호전되지 않아 냉랭한 겨울 밤 참담한 심경으로 ‘편안한 곳에서 일하고 싶으니 새로 좋은 제자를 뽑으실 것’을 간청했다. 스승은 다정하게 나의 등을 두드리며 옆방 다락에서 초상화 한 점을 가져왔다. 당신의 스승인 유명한 외과의사 닥터 오크너(Ochner)에게 받은 초상화로, 너무나 엄격하고 호랑이 같이 무서워 제대로 훈련을 마치고 초상화를 받은 제자가 몇 안 된다 하시며 당신이 받은 그것을 내밀었다. 초상화 왼쪽 모퉁이에는 ‘나의 진지한 감사를 제자에게 보낸다.’라고 쓰여 있었다. 그리고 인자한 미소를 보내시면서 스승도 결핵을 앓을 때 벼랑 끝에 선 심경으로 절망했노라고, 깊은 계곡의 음지를 경험하지 않은 자는 참된 도전과 새로운 창조를 이룰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스승의 훈김 때문이었는지 사랑의 격려 때문이었는지 나는 시나브로 병이 호전되어 전보다 더욱 사명을 가지고 일할 수 있었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스승은 기독의학 연구원을 설립하고 그곳에 머물러 있기를 원했다. 그러나 몇몇 직원들이 그곳에 남아 병원 일에 간섭하려 한다는 소문을 퍼뜨리자 미련 없이 미국으로의 귀국을 결정했다. 떠나기 전날 안타까워하는 나를 불러 일전에 보았던 초상화와 거의 똑같은 형태의 초상화를 나에게 주었다. 그 곳 왼쪽 귀퉁이에는 역시 ‘나의 진지한 감사를 제자에게 보낸다.’라고 쓰여 있었다.
귀국한지 몇 년 후 스승은 알츠하이머 질환을 앓게 되었다. 나는 원장이 되었고 그를 한국에 다시 모시고 싶어 루이빌 딸네 집에 의탁하고 있는 그를 만나러 갔다. 아늑한 강가 해피 레스토랑에 기다리고 있을 때 사위가 밀고 오는 휠체어에 실려 오는 스승을 보았다. 포크질도 제대로 못해 실 부인(Mrs. Seel)의 도움을 받으면서 그는 한국말을 계속했다. 간혹 나를 알아보곤 눈가에 맺힌 눈물은 36년간이나 청춘을 바친 병원을 그리워했기 때문이리라.
나는 힘들거나 어려울 때, 나의 진료실 맞은편 벽에 걸린 스승의 초상화를 보며 ‘스승은 이럴 때 어떻게 극복하셨을까?’ 질문해 본다. 외과의사로 나의 능력을 키워주신 커다란 은혜에 감사하며 그의 고상한 인술에 머문 철학의 그림자라도 흉내 내고 싶어진다. 수술을 집도할 때마다 그의 영향을 받은 나의 손을 바라보며 그를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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