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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싱

  • 연도2018년
  • 수상동상
  • 이름김호준
  • 소속을지대학교병원

병원 인턴에게는 일상이 있다. 혈액을 채취하고 심전도를 찍고 가래와 소변과 대변을 받아내거나 복수를 뽑는 일. 모두가 환자 건강 상태를 알기 위한 실질적인 검사이다. 그밖에 빼놓을 수 없는 일에는 드레싱이 있다. 이 일상의 사전적 정의는 상처면을 보호하기 위해 무엇인가로 상처를 덮어주는 것이다. 각 과에 배치된 인턴들은?병동에서 매일같이 이 일을 수행하게 된다. 오늘도 우리는 이러한 일상으로 병원의?새벽을 열고 있다.


드레싱은 수술 부위와 비수술 부위,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의학적 관점에서라면?몰라도 적어도 인턴에게만큼은 비수술 부위의 드레싱이 훨씬 하기 힘든 일이다. 욕창, 화상, 화농, 찰과상, 허혈 부위를 매일 소독하고 짜내고 덮는 일이란 속된 말로?고역이 아닐 수 없다. 한 병동에서 수십 명의 환자의 상처를 보면 내 손이 붓고 트고, 물집이 생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어느새 기억 밖으로 날아가고마는 일상의 단편이 되었다


특히 격리병실에 계신 환자들의 상처 드레싱을 위해 입실하는 순간은 어느 때보다?답답하다. N95 마스크를 쓰고 방호복을 입고 들어가기에 숨이 우선 가쁘기 때문이다. 결핵과 폐렴, 암을 동시에 앓고 있는 할아버지와 처음 만난 것도 이런 환경에서?였다. 격리병실에서 가쁜 숨을 내쉬고 있는 할아버지의 상처를 보기 위해 옷을 벗긴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양쪽 팔다리와 엉덩이, 등에 욕창이 가득하고 진물이?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어머니뻘 되는 환자 따님이 내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언제부터 내 하루는 미안하게 돼버린 것일까.


할아버지의 드레싱은 30분이 걸린다. 몸을 가누기 힘든 환자를 따님이 움직여 환부를 보이면 그곳을 소독한다. 소독제를 바르고 약을 뿌리고 특수재질의 드레싱제로?덮는다. 흐르는 진물만큼 내 이마에서 땀방울이 쏟아진다. 한 달 동안 나는 그분의?드레싱을 담당하게 되었다. 매일 매일 환자의 상처는 바다처럼 넓어지고, 깊어졌다.?


할아버지의 드레싱 순서는 늘 맨 마지막이었다. 다른 환자들을 일찍 끝낸 다음 남은 힘으로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겠다는 계산이 내게 섰기 때문인데, 하기 싫은 일을 우선순위에서 멀리 떨어뜨려 놓았다고 이야기하는 편이 좀 더 솔직한 고백이 될?것이다. 다른 병실을 다 돌고 난 뒤 할아버지의 격리병실로 들어가는 나의 고집을?보호자도 익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매번 일이 끝나면, 따님이 감사하다며 이제 가서 숨을 조금 돌리라고 말씀해주셨기 때문이다.


이 일의 또 다른 문제는 심각한 상처의 수준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 활동성 결핵균을 감수하고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2주간 항결핵제를 투약하면 활동성이 사그라져야 하는 것이 교과서에 쓰여있는 원칙인 데 반해 할아버지의 면역 상태는 그 치료를 견디기조차 힘든 수준이었다. 치료 성공률이 30%도 되지 않는 광범위 내성 결핵이다. 말기 암이 동반된 폐렴과 활동성 결핵. 항생제를 쓰면 쓸수록 결핵균은 왕성해졌다. 혈액 검사에서 드러난 그 혈기왕성함은 입원 후에 양성도가 높아졌음을 통해 증명되었고, 나날이 심해지는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로서 확실해졌다. 매일 그렇게 한 장의 마스크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기침으로 숨을 나눴다. 기침과 가래는 할아버지가 건네는 유일한 인사다. 나는 답례로 상처를 덮는다.


결혼을 앞둔 내게 호흡기가 좋지 못한 예비 신부가 있다. 아내는 어릴 적부터 작은?먼지에도 기침을 하고 가래를 뱉었다. 간호사로 병원에서 일하는 아내에게 일이 힘든 이유는 무엇보다 건강이었으리라. 밤샘 근무를 하면 다음 날 온종일 누워만 있는 몸이 약한 사람. 이 사람을 만나면, 행여나 그 할아버지로부터 건네받았을지 모르는 균을 전염시키진 않을지 걱정이 들었다. 그래서 매번 미안했다.


여러 가지 생각이 싹트니 할아버지를 만나는 것이 싫어졌다. 나에게 주어진 임무라고 여겨도 견디기 쉽지 않다. 내 건강을 포기하고 살신성인으로 환자를 돌보는 드라마 속 허준이 이런 내 말을 들으면 실망도 했을 법인데, 환자가 미워지는 순간마저?드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상급자의 오더를 따라야 하는 지엄한 병원에서?어찌 인턴이 반기를 들겠는가. 이 일은 내가 아니면 누구도 하지 않는 일상이 아니겠는가. 오직 뜨고 지는 어제의 해가 하루를 견디게 해줄 뿐이었다.


어느 날, 보호자에게 DNR 동의서를 받으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할아버지의 따님과?함께 동의서를 작성했다. 심폐소생술을 하지 말 것에 동의한다는 일종의 각서. 심장과 폐에 문제가 생겼을 때 소생해도 심각한 장기 부전에 의해 연명 치료만 거듭될?것을 주치의가 인정하며, 마지막 가시는 길에 인간의 존엄을 지켜드릴 것을 보호자가 허락한다는 글귀가 쓰인 동의서를 내가 읽어주자 따님이 오열했다. 몇 분간 우리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때 보호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들리지 않는 목소리는 나를 서럽게 했다.


알아보니 할아버지에게는 무남독녀 외동딸뿐이었다. 그분에게도 80년 일상은 존재했을 것이다. 똑같은 하늘에서 우리와 같은 공기를 마시고 내쉬었을 건강한 육체.?그리고 정신. 현재는 어느 것 하나 성한 곳이 없다. 요양병원에서 쫓기듯 대학병원으로 자리를 옮긴 환자. 마스크를 벗고서 우리와 같은 호흡을 할 수 없는 운명의 환자. 이 부드러운 종이 한 장은 상처를 덮는 드레싱 세트보다 얇지만 수십 년의 세월을 담을 정도로 깊게 느껴진다. 물론 할아버지의 드레싱은 그 뒤로도 이어졌다. 어느덧 할아버지에게도 나의 일은 하루의 중요한 일과가 되어버렸다.


할아버지 인생의 마지막 일과가 시작된 날은 유독 맑았다. 선선한 가을 날씨가 찾아온 아침, 병실의 마지막 드레싱이 끝났고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수십 년의 상처를 덮어온 얇은 드레싱을 나는 조심스레 벗겼다. 죽음의 순간을 지키는 것은 언제나 의사의 몫이다. 나도 이제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또 다른 환자가 흘러들어올 이 바다 같은 병실을 오늘도 나는 지키고 있다. 마치?드레싱이라는 일상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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