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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의료봉사상
이달의 수상자 소개
보령의료봉사상 이달의 수상자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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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제25회 이달의 수상자
정해광 원장
정해광성형외과의원 (수원)
| 연도 | 2009년 |
|---|---|
| 회수 | 제 25회 |
| 이름 | 정해광 원장 |
| 소속 | 정해광성형외과의원 |
약력
- 1952. 04. 경기도 용인 출생
1979. 연세의대 졸업
1984. 성형외과 전문의 자격증 취득
1987. 05. ~ 2007. 04. 성형외과 의원 운영
1992. 캄보디아 프놈펜 국립병원 구순열 환자 수술
1997. 몽골의료봉사에 연세의료봉사단 일원으로 참여
2001. 09. ~ 2004. 04. 네팔 바라트플국립보건대학 학장
2004. 11. 정해광 성형외과의원 운영
現 사단법인 은파선교회 회장, 후원단체 한울회 회장, 국제와이즈맨 한국중부지구 효원클럼 이사
2008. 제6회 수원시 보건의료인 공로상 시상식 대상 수상
네팔 석띠골에서 서너 시간을 더 올라 체빵부족을 만났고, 의사에 목마른 이들을 돌보고 나면 어느새 어둠이 찾아왔다. 돌아갈 길을 걱정하고 있노라니 휘엉청 밝은 달이 올랐고, 양갈래로 늘어선 반딧불이 길을 터주었다. 네팔에서의 추억은 그렇게 힘겨웠지만 아름다웠다. 그저 성심껏 부족민들을 돌보며 나눔을 전하고 싶었을 뿐인데 ‘톨로-만체(위대한 사람)’라는 칭호가 돌아왔다. 크리스찬 닥터로 살아가면서 예수님을 믿게 된 것과 쉰 살의 적지 않은 나이에 세계를 품는 선교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네팔 체빵(CHEPANG) 부족과의 아름다운 인연
“우리나이로 쉰이 되면서, 조금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크리스찬으로서 선교에 대한 생각은 언제나 가지고 있었고 2000년도에 부부가 함께 초대를 받아 간 적이 있는 네팔을 떠올렸지요. 저의 은사이신 연세의대
2001년부터 2004년까지
“화전을 일구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으며 아직도 동굴에서 기거하는 부족민들이 있을 정도로 열악하다는 말을 듣고 현지 조력자였던 아내와 함께 산을 오르내리며 마을을 방문했지요. 그들의 삶을 마주하고 심신의 아픔을 치료하는 것은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때 17살 한나와 15살 싼티를 만났다. 이들은 각각 6학년, 4학년으로 산아래 마을로 통학하며 학교를 오갔는데
“지난 8월 한나가 드디어 졸업고사를 통과하고 대학에 진학했는데 마치 내 자식인 양 즐겁더군요. 소녀의 장래희망은 체빵부족을 위해 헌신하는 여교사입니다!”
은혜로운 파도, 널리 퍼지길
1992년 캄보디아 프놈펜 국립병원에서 구순열 환자를 수술한 것을 시작으로, 17년간 몽골, 중국, 태국, 방글라데시, 필리핀 등지를 돌면서 의료봉사를 해온
“실은 이 모든 일은 저희 아버님께서 시작하셨던 일입니다. 70년대부터 교도소를 나와 갈 곳이 없는 분들을 돕기 시작하셨거든요. 지금 돌아가신 지 꼭 십 년이네요. 은혜 은자에 파도 파, 아버님의 호였던 은파라는 이름을 딴 것이 바로 은파선교회이며 돌아가시면서 지금의 은파빌딩까지 내놓으셨죠. 아버님은 정말 의미 있는 생애를 사셨다고 생각합니다.”
1975년에 창립하고 1999년 사단법인체가 된 은파선교회는 사회 소외계층의 지원 및 후원을 통해 사회 복지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단체다. 매월 장애인이나 노약자기관을 후원하고 국내외 무의촌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고 있으며 ‘유진벨’을 통해 북한 결핵환자의 치료약을 공급하기도 했다. 300여 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말 그대로 ‘아름다운 사람들이 만드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꾼다.
“의료는 모든 사람들에 게 접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지요. 모든 사람들은 건강에 관심이 있으니 말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는데 미적 감각을 구현하기 위한 가장 좋은 과가 바로 성형외과더군요.”
수 차례 개인전을 열었을 정도로 미술에도 일가견이 있는
“요즘엔 환자들과 상담하면서 마음의 성형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쓸 데 없는 성형은 권하질 않고 돌려보내거든요. 제가 좀 말이 많은 편이죠? 하하.”
“은연중에 돈과 지위가 행복의 척도가 되는 교육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69억 인구 중에 3억 4천만 인구가 배가 고파 죽어가고 있는데 말이죠. 봉사 현장에 나가면 아이들은 돈이 아니라 사랑의 눈빛을 찾습니다. 그만큼 자존감을 높여주는 일이 없거든요.”
부창부수라고 음악을 전공했지만 남편의 뜻에 적극 동참해 함께 네팔 등의 오지에서 성실한 약사로 활동해준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하면서 인터뷰는 마무리됐다. 경기 탓에 유난히 차갑게만 느껴질 올 겨울


